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밖엔 난 몰라 Oct 06. 2023

고독한 독신자들의 가을 여행

언어와 생각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번주 금요일, 인천공항에 총 집결할 것!"  


젊은 날 독신자로 살 거라고 선언하다 탈당한 배신자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몇 년간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죽은 독신자의 사회' 제목의 카톡방의 메시지에 순식간 와글와글 시끌시끌해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조기은퇴 하여 전업주부 아내의 싸아한 눈치를 슬쩍 피할 겸 인생 2막을 준비할 핑계로 태국 치앙마이로 일년살이 여행을 떠난 친구가 심심해 못 살겠다고 이번 주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입국하니 무조건 인천공항에 집결하여 초가을 산사로 가을 소풍 가자는 007 같은 지령이 떨어졌지요. 성격 급한 필자는 늙수그레  나 닮은 친구들을 태워 가을 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갈 기대와 설렘으로 어반 스케칭 (Urban Sketching) 그림 한 점 먼저 뚝딱 그렸지요.


같은 시대를 만나 같은 차를 함께 타고 초가을 낙엽여행을 떠난 우리는 1962년생 범띠, 베이비 부머 세대 (Baby Boomer Generation) 막바지 세대랍니다. 위로는 숫자가 더 많은 형 누나들의 눈치를 보며 자랐고 아래로는 개성 강한 X 세대 후배들의 블라인드(Blind) 술자리 안주감이 되어서도 굴하지 않고 척박한 인생항로 거쳐온 나름대로 베테랑 초로의 아저씨 네 명이 10년 만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만났으니 그 동질감이 얼마나 큰지, 강화도 전등사 산사로 가는 길 선선한 하늘과 석양에 물들어 간 가로수들의 냄새를 맡으며 동년배의 기쁨을 나누며 가을 풍경 속으로 쑤욱하고 빨려 들어 들어갔지요. 



젊은 날 같은 하숙집을 전전하며 함께 숙식을 하던 네 명의 친구들은 1990년의 주말 미국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함께 보고 문화적 충격을 겪었지요. 그 해 가을 신촌의 대학가 앞 저녁이면 모이던 아지트 '다(茶) 까페'에서 영화를 본 감동을 얘기하다 '죽은 독신자의 사회'를 결성했지요.


굳이 결혼하지 않겠노라 서약하기 위해 결성한 이름은 아니지만, 영화의 주인공 존 키팅 선생님의 대사에 열렬히 감동하여 그 정신을 이어 가자고, 뭔가 우리에게 어울리는 근사한 클럽 이름 하나 지어 보자며 코미디(Comedy)처럼 웃기는 끝장 토론 끝에 나온 이름이지요. 


첫째, 우리 네 명 공히 첫사랑에 처절히 실패한 점, 둘째, 공히 돈 없는 하숙생의 재정적 신분, 셋째,  서열을 따지던 상명하복 신입사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한 점을 우리는 말 안 해도 서로 동병상련 알아차렸으니까요. 그래도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을 치열하게 고민한 점들을 볼 때,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지 않는 한 우리들 중 10년 안에 장가갈 친구는 절대로 나오는 일이 없을 거라 100% 만장일치로 동의하여 '죽은 독신자의 사회' 이름을 짓고, 세상을 바꿀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포장마차로 들어갔지요.


그런데, 21세기 이전의 대한민국 산업사회에서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 이던가요? 존 키팅 선생님의 말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처럼 되고, 혹은 사생아로 태어나 전 세계 디지털 산업의 생태계를 만든 스티브 잡스 (Steve Jobs)처럼 세상을 바꾸거나 리더가 된다는 것이, 그것도 선진국 따라잡기에 무척이나 바빴던 제조중심국가 대한민국에서 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말과 생각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존 키팅 선생님의 대사)  



각설하고,  같은 해 같은 시절에 태어난 '죽은 독신자의 사회'가 해체되지 않은 이유는 그중 여전히 한 명의 친구가 남부러울 만큼 건강한 싱글의 삶을 놓지 않는 것을 보며 인간이란 다양성이 필요한 종족임을 알아차렸지요.


산사를 찾아 오르는 숲길을 걸으며 떨어진 낙엽들을 바라보다 우리는 함께 오래 늙어 가자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허허~ 거리며 나눴지요. 춥고 메마른 겨울나무를 살리기 위해 나뭇잎은 가을새벽 서릿발에 어쩔 수 없어 떨어져 버리는 자연현상이지만 인간의 품격은 때가 오면 스스로 내려놓고 나누고 물려줄 때 비로소 인생의 가을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서로 끄덕이며 산사에 올라 부처님께 삼배 절하고 내려오며 이번 겨울엔 아직도 연탄이 필요한 분들에게 연탄을 나누며 '죽은 독신자의 사회' 모임을 이어가 보자고 말이지요. 

 

(사진= 픽사베이)


세월이 지나 각자 결혼을 하든 독신으로 지내든, 부자가 되든 가난해지든, 각자 다른 길을 가던 우리가 만나 우리가 사랑하던 모습을 재발견한 것은 낙엽길 바위틈새 형형색색 다른 색깔의 낙엽들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발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따뜻한 잠자리를 잃은 이웃에게 보내는 연탄 한 장, 밥 한 그릇 먹지 못해 서러운 이웃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야 말로 존 키팅 선생님이 얘기하며 우리가 꿈 꾸었던 세상을 바꾸는 기장 확실한 벽돌 한 장 아닐까요? 


며칠 후 치앙마이 일년살이 집으로 되돌아간 친구에게서 최애곡 'Autumn Leaves' 플레이 리스트와 함께  눈물겨운 카톡 메시지가 날아왔지요! 


우리 푸른 젊은 날

고독을 사랑하던 친구여

가진 것만큼 베풀자

아픈 만큼 용서하고 품어 주자

산사 소퐁 가던 길 밟았던 찬란한 청춘의 길

세상을 바꿀 나눔의 낙엽길로 영원히 기억하자~







이전 05화 추자도에서 탱고 춤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