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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밖엔 난 몰라 Jan 24. 2023

남한산성의 선물, 붕어빵

새 해  수어장대 일출 - 힘겨운 이웃에 선물같은 빛을 퍼나르다


2023년 1월 1일 새벽 6시 정각입니다. '째깍'거리는 새날의 시계 초침 소리에 차분히 깨어납니다.

오차 없이 매정하게 떠나간 연말로부터 움츠린 내 마음 우물 속에 찬 물 한 바가지 채워볼 요량으로 미련 없이 잠자리를 벗어납니다. 해가 바뀌긴 했어도 무섭게 오른 생활물가에 아무런 변화 없는 원단(元旦)의 아침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태양신의 기운을 부어 넣으리라 재촉하는 마음으로 남한산성 수어장대(守禦將臺)로 찾아갈 내비게이션(Navitation)과 차의 시동을 켭니다. 새해 첫 음악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의 첫 소절 “바~바밤~” 사운드를 들으며,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아니 벌써~ 인생 60주년’을 정면으로 마주침에 탄식하며 새벽의 어둠을 가르며 남한산성으로 "바바바밤~" 달려갑니다.

파란 많은 선조의 역사가 흰 눈으로 덮인 남한산성 남문을 거쳐 산성 길 따라 가쁜 숨 몰아쉬며 수어장대로 차근차근 올라갑니다. 피할 길 없는 나이 듦과 줄어 가는 은행 잔고에 뭔가 새로운 광명을 캐낼 심산으로 시퍼런 국방의 기운이 서린 태양신을 알현하고자, 산성을 호령하던 통수권자 사령관으로 빙의하여 수어장대에 뒷짐 지고 올랐습니다.



패색 짙은 카타르 월드컵 16강 길목에서 연장전 역전의 공을 닮은, 전의에 불타는 새 태양이 불안한 세상 이 어둠을 뚫고 “슛 골~인” 후련하게 솟아오릅니다. 콧등이 붉도록 가슴이 뻐근하도록 붉은 태양이 돌아와 실컷 나를 비춥니다. 그 빛은 ‘신이시여~’ 기도를 자아내는 현묘한 울림이며, 내 삶을 뒤돌아보는 장엄한 통곡의 빛으로 피를 데우며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국민교육헌장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학교 숙제로 달달 외워야 했었고 ‘경제계획 5개년’이 선진국으로 가는 최고의 가치로 배웠던 그 시절 청춘들에게, 새해부터는 겸손으로 이웃에게 다가가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전령이 되어 보라고 수어장대의 태양이 저에게 말을 걸어 줍니다.


            (그림=박윤성 화백 /wellageing.com)


햇살에 목욕재계하여 열정의 피를 뜨겁게 달구었으니, 인심 메마른 세상 힘겨운 이웃에게 선물이 되라는 태양신의 메시지를 받아 냅니다. 카메라 조리개를 타고 들어온 태양을 바라보는 내 동공 속으로 수억 광년 우주의 별에서 전해온 축복이 타고 들어와 생의 기쁨으로 터져 버린 눈시울이 촉촉해집니다.


태양은 속삭입니다...

"가서 네 이웃들과 교감하라~ 영감이 끊기고 전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될 뿐이다…”


78세에 비로소 '청춘' 시를 쓴 사무엘 울만(Samuel Ulman)은 불행하고 불쾌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올수록 태양처럼 뜨겁게 일어나 세상을 비춘 열정 청춘이 되라고 주문합니다.


생애의 전반전은 경쟁의 링 위에서 어떤 기록으로 무엇을 이룰지 충분히 난타전을 벌였지요. 그러나 생의 후반전만큼은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지 모색하고 고민하며 타인에게 한 발짝 먼저 다가가 보라는 태양신의 신탁을 받았습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계단을 천천히 다지며 내려가 내가 사는 복잡한 생계형 대도시로 되돌아갑니다. 반대하는 라이벌에게, 길 잃은 노약자에게, 붕어빵 굽는 길거리 가게의 종업원에게, 바쁠 때 걸려 온 텔레마케터에게 좌절과 냉담을 주는 눈빛, 상처 주지 않는 말 한마디야말로 태양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청춘의 멋들어진 의무가 아닐까요?


일출을 뒤로 하산길에 새벽부터 붕어빵 굽는 중년 부부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하며 희망의 붕어빵 한 봉지 담아 왔지요. 집으로 돌아와, 일터에서 고단한 새해를 맞은 우리 아파트 경비원님에게 온기 품은 붕어빵을 슬며시 드렸지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고맙습니다 아저씨



차별 없이 비추는 저 태양의 빛으로 타인과 타인을 연결하는 우리는 지구촌 우아한 붕어빵 형제들 아닐까요?


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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