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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밖엔 난 몰라 Feb 12. 2023

정월보름, 우리들의 문~샷


"우리, 문~샷 한 잔 하실래요?"


"재깍-재깍-재깍-재깍~"

올해의 설날 새벽은 시간을 잘라낸 가위소리처럼 거꾸로 아프게 돌아갔지요.

고교 시절 '나의 담임 선생님'이 2023 계묘년(癸卯年) 설날을 마중하기 몇 시간 앞두고 제 인생의 큰 별로 세상을 떠나셨으니까요. 신년의 세배 대신 나의 선생님과 원치 않는 이별의 삼배를 올리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귀성객들 틈에 끼어 서둘러 허망한 마음으로 새벽 첫 열차에 올랐지요.


매년 스승의 날이 올 때마다 하던 일 멈추고 세리머니 (Ceremony)처럼 화원을 찾아가 보내 드린 붉은 카네이션 (Carnation) 은 이제 더 이상 보내 드릴 수 없음에 애통 스럽습니다 보낼 수 없지요. 하얀 국화 근조 바구니를 품고 찾은 영안실의 삼배는 내가 이 세상 여기까지 버티도록 '희망'을 안겨 주신 선생님과의 숭고한 작별식이었지요. 장례식을 마치고 귀경길 돌아가는 열차 차창밖을 바라보는 내 말랐던 눈물샘은 뜨겁고 촉촉하게 젖어 갔지요.


꿈을 잃어가던 미생 제자의 잠재성을 발견하여 희망을 나눠 주신 분과의 이별은 마치 썰물이 빠져나간 뻘밭 뻐끔거리는 조개 숨구멍처럼 허전하고 스산하기만 했지요 그리고 그런 감정은 설날부터 정월 보름 오늘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요.  


헤르만 헷세 (Hermann Hesse)의 성장소설 데미안 (Demian)의 주인공이 경험한 '알까기 세상'에서 보다 훨씬 미숙한 저에겐 현실적 희망의 마중물을 퍼 올려 주신 (류인일) 선생님과 제자인 나, 두 사람의 내밀한 세계가 사라져 버린 상실감을 달래려 며칠이 찾아온 바다로 갔지요. 살아남은 자만이 볼 수 있는 보름달이 푸른 바다 수평선에 떡~하니 가슴 벅차게 걸려 있었지요. 지구 온난화를 거슬러 온 영하 10도 삭풍에 몸은 덜덜 떨려도 소나무처럼 바위에 앉아 희망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카네이션 한 송이처럼 붉고 아름답지요.


21세기 과학의 보름달엔 그리스 신화 속 달과 풍요의 여신 셀레네 (Selene)의 모습과 그의 50명 자녀들의 흔적은 이미 지워졌지만, 눈앞에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석별의 삼배와 감사의 정종 한 잔의 예를 갖춥니다. 보름달 신화 속 주인공처럼 원~샷 정종 한 잔 쭈욱 들이켭니다. 목넘이를 한 술 모금은 보름달 귀 밝은 기운과 풍요의 달이 타고 내 몸 전신으로 스르륵 파고들어 옵니다.



정월 대보름의 달에는 살아생전 퇴행성 관절염 통증을 앓으면서도 잔병치례 많은 외손자를 업고 십리길 병원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녔던 외할머님이 보입니다. 계묘년 토끼와 함께 이승에서 누리지 못한 행복감을 맘 껏 누리시길 기도 하며 또 한 잔 들이켭니다.




내 어머니.. 중상층의 예술적 삶에 다가가지 못하고 신산한 생애를 살다 저에게 '사랑한다' 말 대신 '잘해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회한의 유언을 남기며 이승을 떠난 어머님도 국화처럼 하얀 저 달빛 속 귀밝이 술 한잔 걸치며 평안하시기를 기도 합니다.


정종 한 잔에 따사해진 저 보름달 은은한 빛처럼 나를 지지해 주셨던 장모님, 세배 갈 때마다 세뱃돈을 더 많이 찔러 주며 기울어 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라 눈물로 당부하셨던 이모님, 해운대 백사장에 모닥불 피우며 기타 반주에 세상의 모든 멜랑꼴릭 (Melancholic) 노래를 새벽까지 불렀던 사춘기 친구들과, 한 직장에서  한 번도 비난하지 않고 자애로 보살펴 준 롤 모델 선배님의 얼굴도 보름달에 얼큰하게 걸려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온전함 그리고 사회적 성장의 보람은 내 것이 아님을 정월 보름달을 보며 꺠닫습니다. 나의 몸과 정신세계의 건강을 지켜 주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눠 주신 분들의 사랑과 우정을 보름달을 깨달으며 귀 밝음 술 한 잔을 사랑과 감사의 '풀~문~샷 (Full Moon Shot)'이라 이름 지어 봅니다.   

     




원래의 '문~샷 (Moon Shot)' 용어는 1962년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혁신 프로젝트의 이름이지요. 하늘의 달을 조금 더 잘 보기 위해 망원경의 성능을 개량하는 대신 아예 달에 직접 가서 달을 밟을 수 있는 달나라 탐사선을 만들겠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결국 1969년 아폴로 11호는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달나라에 안착하여 문~샷은 완성되었지요.


인류문명의 진정한 진화는 단순히 생각하고 개선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과감히 실험하고 여러 번의 실패도 감수해 내겠다는 결단을 '문~샷 씽킹' (Moon Shot Thinking)이라 한다지요. 글로벌 벤처기업의 발원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 (Silicon Valley) 도시는 단순히 생각만 하고 그림을 그려 보는 아이디어 단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능성을 심층 토론하고 실험하여 실행에 옮기는 조직 문화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혁신적 사고를 실제로 옮겨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퍼스트-무버 (First-Mover)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요. 예를 들어 실리콘 대표적 문~샷 (Moon Shot) 4대 혁신기업 Face Book,-Apple,-NetFlix,-Google의 약자를 따서 'FANG-Moon Shot-Entrepreneuers'라 부를 수 있겠지요.


달나라 탐험 아이디어로 시작한 문~샷 씽킹' (Moon Shot Thinking)은 더 이상 혁신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21세기 우리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생활 용어가 되었지요. 저의 예를 들어 보자면, 글로벌 벤처 기업가인 제가 에세이 작가로 변신한 것은 직업을 초월하여 성취한 특별한 문~샷이지요. 업무일지에 일상의 소감 한 두줄 메모한 습관이 모여 주요 일간신문 에세이 작가로 데뷔한 것은 삶의 저변과 여정을 넓힌 화학적 변화이며 제 행복감이 높아진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바닷가 초저녁 보름달 삼배의 예배를 마치고 덕유산 초입을 걸어 터벅터벅 걸어가는 겨울 나그네가 되어 봅니다. 눈 속에서 만난 설강화 (雪降花; Snow Drop) 군락을 발견합니다. 다른 꽃들은 눈과 얼음 속에 숨어 미처 피어날 감당을 꿈꾸지 못할 때 꽃 말 그대로 여전히 혹한의 날씨 눈에 살며시 내려앉은 모습으로 피어난 설강화는 가슴 설레도록 신비롭기만 합니다. 1월의 탄생화 설강화는 혹독한 겨울에 기죽지 않고 거꾸로 '희망'으로 솟아 오른, 강인한 꽃이라 하지요. 아무도 눈 속에서 꽃을 피우려 하지 않을 때 나만의 생명력을 눈 속에서 결정짓는 설강화를 저만의 방식으로 [문~샷 플라워 (*Moon Shot Flower)] 를 좋아합니다.



[Snowdrops (설강화)]


내가 어떠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알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을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중략)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

(시인 : 루이스 글릭)



[인생 문~샷을 위하여]


절망을 견디는 기도

기도를 행동하는 결단

결단을 반복한 습관  

절망에 저항하는 태도

힘겨운 이웃에게 친절한 나눔

내 인생의 문~샷 (*Moon Shot) 가치를 설강화 (Snowdrop) 꽃으로 피웁니다.


(덕유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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