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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밖엔 난 몰라 Jun 22. 2024

여름날의 안분지족 - 겨울을 쓰다 (詩)

더울수록 눈꽃을 그린다 - 덥거나 말거나 이열치냉 한 줄


계절에 상관 없이 바람은 보이지 않아 참 좋다.

자작나무에 핀 눈꽃이 살 에는 바람에 휘날릴 때

바람은 꽃잎 날린 풍경을 훼방 놓지 않으므로 더욱 좋다.

바람은 고귀한 것들에 날개 하나 달아 놓고  슬쩍 빠져 주니까 말이지


사랑에 관계없이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더더욱 좋다.

원대리 가는 길 찬바람 휘청대는 소리에 나도 따라 울 때

'언 손 호호 불어 미래의 연 하나 띄우거라 네 이놈~' 기운을 불어 주니 좋다 말이지

정월 대보름 연줄에 마음 걸어 두면 허공마저 담아 주니까 말이지





여름이 짙을수록 올레길 한겨울 눈 속 붉어진 카멜리아 동백꽃이 그립다.

서귀포 바닷길 동백꽃 입술에 하얀 나비 한마리 내려 않은 겨울 아침  

오름에 올라 섶섬 내려보며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를 외쳤다 말이지

당신이  화답해 주었다면 또 어때을까 보이지 않는 내 마음도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날의 더위와 인플레가 걱정된다면

내일도 모레도 자작나무 무성한 바람의 언덕으로 걸어 가보라

보이지 않던 회상의 기억들을 찬 바람이 불러줄 터인즉

비로소 보이지 않던 모든 것이 당신의 지갑을 가득 채울 테니까 말이지

보이지 않는 바람이 없다면 지갑 속 그리움이란 없을 테니까 말이지


아아~ 이 얼마나 위대한 우주의 순환인가?

푹푹 찌는 여름의 천둥 소나기는 자작나무숲 눈꽃의 전조이며

비발디의 바이올린 소리는 겨울을 준비하는 서곡임을 말이지


거실에 앉아 시립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 펼친 그 위에

자작나무와 동백의 눈꽃을 그리다 보면 틀림없이 겨울은

내가 꿈꾸는 사계의 겨울을 다시 볼 거라 믿는다 말이지  

오늘의 여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어 꼿꼿이 시를 쓴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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