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체한 날 나는 밭으로 간다.
#단단히 체했다.
명상이 많이 필요한 날이다.
그런 날이 있다.
유독 감정들이 마구 튀어 올라 부딪치는 날.
다들 왜 이래.
다 같이 약속이라도 했나.
나는 동네북인가.
감정에 체한 날이다.
이런 날은 나를 잘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외부의 자극은 어제나 그제나 그대로인데 유독 오늘 체한 거라면 그건 내 안에 그것들을 소화시키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니까.
스트레칭을 했고, 짧게 명상도 했고, 아이와 산책도 다녀왔다.
웬만해서는 이 정도에 대부분 다 풀리는데 오늘은 단단히 체했나 보다. 풀리지가 않는다.
이 체기 때문에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 나만의 작은 명상
3월의 바람이 차가웠는데 점퍼도 입지 않고 작은 텃밭으로 나가 쭈그려 앉았다.
어머, 작약 새싹이 올라와 있네.
꼬물이 같은 모습.
우단 동자도 여기저기에서 새싹이 올라온다.
다른 집에서는 우단 동자가 너무 심하게 번져서 뽑아내느라 바쁘다는데 나의 텃밭에서는 우단 동자가 왜 그리도 자리를 못 잡는지 아쉬웠었는데 이제야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올해는 잔뜩 핀 우단 동자 볼 수 있으려나.
부추가 삐죽삐죽 다 올라왔고!
달래~달래~나의 사랑 달래도 많이 올라와 있었네.
호미를 들고 땅을 콕~ 찍어 풀을 캐냈다.
평소엔 가위로 잘라내는데 오늘은 콕 찍어 캐내고 싶었다.
체한 것들도 이렇게 콕! 찍어서 확~뜯어내 버려야지.
싹 다 캐내버려야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추워서 몇 개 못 캐냈다.
감정도 추위 앞에서는 찍소리 못한다.
밭을 휘 둘러보고 호미질도 몇 번 콕콕하고 나니 개운했다.
체한 게 다 내려간 건 아니지만 이곳이 나에게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건 명확하다.
밭일은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밭에서 일할 때, 명상의 순간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적당한 노동 속에 반복적인 움직임과 작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얻는 기쁨이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노동을 미화시키는 것으로 오늘의 체함을 해소해본다.
잘 소화 되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