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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Dec 08. 2021

질투

시샘으로 시작해서 자괴감으로 끝나는 감정의 반복

'나는 아무래도 착하기는 글렀나 봐...'


옆 팀의 행사를 막 시작하던 참이었다. 그 팀을 맡고 있는 K 팀장님은 나와 함께 스피치 교육을 받고 있다. 선생님은 강의 후에 매일 간단한 스피치 녹음을 전송하게 하여 우리의 스피치를 보정해 주신다. K 팀장님은 오늘 행상의 인사말을 숙제로 연습했나 보다. 배운 대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인사말을 마쳤다. 그녀의 첫마디에 상무님이 뒤돌아 흐뭇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스피치 교육!"


그녀는 정말 잘했다. 매끄러웠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나의 첫 감정은 질투다. 정확히 대사로 표현하자면 어떤 것인지도 모를 약간의 질투심이 마음 저 아래에 차오른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정도?

'잘하는 걸, 샘나는데? 나는 잘할 수 있을까?'


뒤돌아 흐뭇해하던 상무님이 지난달 말 승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100% 기쁘지만은 않았다. 너무 좋아하는 언니이기도 하고, 승진할 만큼 노력했고, 응당 받을만한 대가였다. 근래 어머님이 편찮으셨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란 생각에 뛸 듯이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의 한 10-20%쯤은 질투다.  

'좋겠다. 부럽다. 난 왜 이 모양이지? 그렇다고 나보고 하라면 못해.'


정확히 표현하면 질투와 시샘에 이은 자신감 결여... 착하지도 않고 않고 안 착하지도 않고... 나와 달리 온몸으로 축하와 기쁨을 표현하는 동료들을 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왜 누군가의 승리와 기쁨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하는가... 언제나 늘 꺼림칙한 질투나 시기에 이은 자괴감이 따른다.


최근에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즈음, 이별(?) 선물로 친구가 준 책을 다시 펼쳤다. 정채봉 작가의 <초승달과 밤배>다. 그녀가 엽서에 쓴 편지도 함께 있다. 거기에 이런 구절들이 있다.

'너는 이 책을 읽고 뭘 느낄까? 그네들의 삶을 어떻게 느낄까? 이런 사람들이 되려고 노력하면 어떠니? 지나가는 걸인을 보면 자기 먹던 밥 숟가락을 씻어 넘겨주고, 자연을 개척해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


통상 남들에게 '착하다'는 표현을 많이 듣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서 그녀는 나의 질투나 시기심 같은 착하지 않은 감정의 낌새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이 되려고 노력하면 어떠니?'라는 말에서 거의 30년 만에 뜨끔함을 느낀다. 


번역가 서메리는 착하게 살면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문득 나도 착하게 살고 싶어졌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좋아했다.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좋았다. 작년 언제쯤 <그 남자네 집>을 다시 읽었을 때, 주인공이 너무 답답하고 내숭 떠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던 주인공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그때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모범생으로 살았고 그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올곧고 착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절대 아니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악동 때문에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 그래도 착하게 살고 싶다. <초승달과 밤배>를 읽으며, 사랑하던 사람이 남의 아이를 낳고 자살시도 중에 식도가 타는 사고를 당해도 그녀의 남은 생애라도 돌보고 싶다는 동묵 아저씨의 말에 가슴이 아린다. 고통 속에서 눈이 떠진다는 동묵 아저씨의 성숙함에 고개를 숙이고 숙여도 부족하다. 나는 착하지 않다. 그렇지만 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채봉과 박완서와 김선영과 무레 요코와 같은 작가들의 이야기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다. <초승달과 밤배> 속 난나 할머니처럼 내가 팔은 땅 위에 보리가 웃자라지 않아서, 땅을 산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보리를 밟아줄 수 있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 내 마음 밑바닥에 깔리는 착하지 않은 감정 때문에 누군가 상처 받거나 기분 상하지 않기를... 시간과 함께 내 마음 밑바닥에 깔린 착하지 않은 감정들도 흘러갈 수 있기를...


#직장 #일터 #감성 #질투 #자괴감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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