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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Aug 30. 2023

나의 미래남편, 혹시.. 너님이신가요?


살아오며 운명이라 생각했던 만이 있다. 그때마다 ‘이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곤 했지. 결론적으로는 이놈도 아니었고 저놈도 아니었다. 이후로는 학습 능력이 생겨 예전만큼 깨방정 떨지 않게 됐달까. 그럼에도 '혹시 너님이 내 미래 남편인가요..?'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인연은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가장 영화 같았던 만남은 하늘에서의 만남이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8개월간 파견근무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마도 비용상의 문제로 직항이 아닌 중동에서 경유하는 항공편을 탔던 것 같다. 경유지에 도착하였을 때 나의 저질 체력은 이미 바닥나있었고 머릿속에는 얼른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긴긴 대기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시작된 인천행 비행기 탑승 수속. 티켓에 적힌 지정 좌석에 앉자마자 승무원에게 냉수 한 잔을 부탁했다. 시원한 물을 황급히 들이켜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한국 분이신가 봐요?”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 예상치도 못한 순간 공간을 침범한 낯선 음성에 눈이 동그래진다. 잠시 짧은 정적.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옆 좌석의 남성에게 말을 건넨다.


“아? 아 네~ 갈증이 나서 앉자마자 물부터 찾았네요.ㅎㅎ 어디에서 오시는 거세요?”


“남아공에서 왔어요. 아버지가 그곳에서 사업을 하시거든요. 가족 모두 그곳에 살아요.”


“아아아~ 그렇구나. 저는 해외에서 일하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끊어질 듯 계속 이어졌다. 앳된 얼굴이어서 당연히 나보다 어릴 거라 생각했던 그는 알고 보니 연상의 남성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긴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알아갔다. 처음 보는 남자와 이렇게 마음이 통할 수 있는 걸까? 제까지 리가 몰던 사이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막힘없이 말이 통했다. 


'이 무슨 영화 같은 상황이람?'


'혹시 나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아니지, 내가 애타게 찾던 미래 남편… 혹시 너님이신가요?'


하다못해 지하철을 타더라도 운명의 상대가 말을 걸어오는 상상을 하는 나로서는 이건 운명의 데스티니인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인천공항에서 헤어지기 전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아아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더라.


바로 다음날 그에게 연락이 왔고 우리는 어느 한 술집에서 재회했다. 막걸리 잔이 짠! 하고 부딪힐 때마다 마음이 말랑거렸다.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 남자라니! 웃는 모습이 참 예뻤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잊고 있던 사실 하나. 그는 가족과 함께 남아공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 얼마 안 가 는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갔고 우리의 연락은 점점 사그라들다 결국에는 0에 수렴하게 되었다. 타지에 사는 그와 한국에 있는 나와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 


운명의 반쪽이라 착각했던 묘령의 남자는 허무하게도 신속히 로그아웃을 했다.




사실 결혼을 한다면 20대 초반에 사귄 남자친구와 할 거라 생각했다.


그와의 연애가 5년 정도 되었을 때 아마도 별일 없으면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 싶었다. 어쩌다 보니 별일이 생겨 지금은 이별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가슴이 두근거려 잠 못 이룬다던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애가 타는 감정은 없었지만 편안하고 안정적인 연애였다. 말 그대로 무난한 신랑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 각자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잔잔한 관계는 안정적으로 순항 중이었다. 착착 진행되는 연애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균열이 시작되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첫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가 해외로 떠나면서 관계가 조금씩 멀어졌던 것 같다. 그와 하는 두 번째 장거리 연애였다. 그도 지쳤겠지. 그래도 워낙 관계가 탄탄하고 신뢰가 두터워 막연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 롱디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 역시 이직한 회사에서 적응하느라 힘든 하루를 보내던 시기였다. 서로를 위로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위로받고 싶은 나날이었다.


우리는 여느 커플처럼 싸웠고, 감정의 밑바닥을 보았고 결국 헤어졌다. 길고 긴 관계가 이렇게 전화 한 통화로 끝나버리는 건가? 분노와 허무함이 려왔다. 너 없이도 당당하게 잘 살거라 떵떵거렸지만 말하기 무섭게 며칠을 몸져 앓아누웠다. 사람이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 세상이 핑핑 돈다는 사실을 태어나 처음 깨달았다. 이석증 진단을 받고 한동안 병자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괜찮은 사람을 놓친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크게 미련을 두지는 않았다.


텅 빈 챕터를 펼쳐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 타이밍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 같던 비행기 안에서의 만남도,

은은한 온돌방 같았던 긴 연애도 결국엔 끝이 났다.


당시엔 답답하고 속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다.


어떤 인연은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어지고 반면 어떤 인연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쉬이 끊어진다. 그저 인연이 아니었고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런저런 일을 겪었지만 아직도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면 주책맞게 ‘혹시… 너님이 내 미래 남편이신가요?’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언젠가 반드시 당신과 만나게 될 거란

희망을 잃지 않아서일까.


아마도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질 것이다. 그렇게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곳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결국에 우리는 만나게 될 거라는 단단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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