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집에 돌아오다 엄마와 베스킨라빈스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키오스크를 낯설어하는 엄마를 일단 자리에 앉혀놓고 엄마가 좋아하는 맛, 망고탱고를 주문한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엄마 얼굴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힐끗 옆쪽 테이블을 보니 대충 알 것도 같다. 그곳에는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 한 분과 딸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다소곳하게 앉아 딸이 가져다준 아이스크림을 조용조용 떠먹는 할머니와, 다정한 목소리로 "엄마 맛있어~?"라고 말을 거는 딸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나 보다.
자신은 외할머니에게 한 번도 그렇게 해드리지 못했다며, 저렇게 말을 건네본 적 없는 딸이었다며 훌쩍인다. 지나고 나면 후회가 가득한 것이 엄마와 딸 사이일 테지. 두 모녀가 부러웠는지 아니면 갑자기 마음이 미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속이 상했나 보다. 딸의 마음은 엄마와 동기화되기 마련이어서내 마음도 괜스레 찌르르...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훌쩍거리는 엄마의 손등을 토닥토닥거리며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은 하루.
둘.
딸과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엄마는
많은 일을 함께하고 싶어 한다.
시장을 함께보고 싶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의 여유도 함께 누리고 싶고, 은행도 병원도 손을 꼭 잡고 함께 가고 싶어 한다. 프리랜서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지만가끔은 '그 정도는 엄마 혼자 가도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표정을 읽는 재주가 비상한 건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면 엄마는"너 시집가면 이런 시간이 그리울 거야!"라고 부루퉁해져선 입을 쭉 내밀고 말한다. 속으로는 '글쎄요. 시집은 아직 먼~ 일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라고 생각하지만 못 이기는 척 집 밖을 나선다.
환갑 이후부터려나. 부모님 얼굴에서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이 부쩍 느껴진다. 이렇게 함께 웃고 떠들고 하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생각을 하면 사실 그렇게 바쁠 것도 없는데- 물론 그걸 자꾸 까먹어서 문제지만.
오물오물 식사를 하는 모습이라던지 TV를 보며 와하하 웃는 엄마의 모습에 요즘 들어 자주 울컥한다. 이건 무슨 감정인 걸까. 가끔씩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를 엄마는
오늘도 방문을 열고 묻는다.
"딸~ 우리 오늘은 뭐 먹을까?"
셋.
하루는 머리가 아파 죽을상을 하고 있으니 엄마 왈,
"딸~ 저기 모과나무에 모과를 봐. 못생긴 모과를 보면 우리 딸 기분이 나아질 거야. 모과는 못생겼는데 정말 향긋해~"
"???"
무슨 말일까. 가끔 엄마의 말을 듣다 보면 무슨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건지 갸웃할 때가 있다. 그래도 확실한 건 나를 웃게 한다는 것. 말도 안 되는 엄마의 대답에 웃음이 초ㅑ!하고 터져버렸다. 엄마는 정말 엉뚱해.
네엣.
함께 장을 보고 들어와 엄마는 부엌에서 채소를 다듬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업무를 본다. 그때 갑자기 "꺄!" 하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보니 엄마가 투명한 봉투를 손에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깻순 사 온 거에 거미가 들어있어 T.T 어쩌지?"
"뭐? 어디 봐봐!"
"여기 봐바. 엄청 크지?"
"음... 너무 큰데. 우리 1층 풀 있는 데다가 방생해 주자!"
그렇게 시작된 거미 방생 대작전.
혹시 몰라 나무젓가락도 야무지게 챙기고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정신없는 와중에 엄마는 음식 쓰레기를 내려간 김에 버리겠다며 부산하다. 어찌어찌 다 챙기고 나와 먼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함께 거미를 놓아준다.
"엄마 근데 거미는 살아서 행복할까? 사실 죽고 싶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살려주는 건 아닐까"
"그러게~ 그래도 뭐 살아서 좋지 않을까."
"그른가? 아빠 퇴근하면 거미 살려줬다고 말해주자!"
"그래. 아유 정신없어. 어쩐지 깻순 다듬는데 이상하게 거미줄 같은 게 있더라고. 잘 끊어지지도 않고 어쩌고 저쩌고"
우리가 놓아준 거미는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작은 해프닝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 속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한참이 지난 후, 그때 거미를 기억하냐며 대화를 시작하겠지?
추억은 또 다른 추억을 부르고, 그렇게 고개를 넘어가듯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을 알기에. 이렇게 엄마와 보내는 하루가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