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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모험가 Jun 11. 2017

도쿄에 두고 온 마음 2

한겨울 도쿄의 기억 - 2

어느 날의 오후엔, 이상하게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졌다.

한국 드라마에서 떡볶이를 본 적이 있다며, 먹어보고 싶다던 이야기가 생각난 나는 코리아타운이 있는 신오쿠보의 한국 마트에 들러 떡볶이 재료를 사서 귀가했다.

타인의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타국의 주방에선 더더욱.

우리네 부엌엔 당연스레 있던 고춧가루 같은 재료들은 이곳에선 찾기 힘들었고, 궁여지책으로 베트남 고추를 넣어 매운맛의 흉내를 내보았다.

그 낯선 부엌에서 나는 한국의 맛을 도쿄의 식탁에 올려내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한겨울의 창밖은 찬 바람이 부는데, 조리대 앞 나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으니.

냄비 속 베트남 고추와 어묵, 그리고 떡의 오묘한 조합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생경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한국의 부엌이었다면 누군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를, 낯설고도 살짝은 우스꽝스러운 조합이었을지도 모를.

다행히도 적당하게 불은 어묵과 말랑말랑한 떡, 제법 성공적이었던 그 날의 떡볶이를 생각하면 맛있게 먹어준 그녀들의 표정과 우리 주변을 감돌던 행복하고 따뜻한 기운만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날의 떡볶이 맛의 팔 할엔 나의 조마조마한 마음이 녹아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나에게 그랬듯,
그녀들에게도 오래오래 기억될 추억의 맛이었기를.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 때마침 다음 날은 내 생일이었다. 차를 마시다가 얼핏 생일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얘기했던 것뿐이라, 정말이지 얘기한 줄도 잊고 있었다.

오늘 아침 후코가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꼭 함께 저녁을 먹자.’ 라며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 생각나,

조금 일찍 들어가면서도 나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마지막 날의 아쉬움과 오랜 여정의 고단함이 뒤섞여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짧게만 느껴져, 부러 빙빙 다른 골목을 구석구석 돌고 또 돌았다.



딱 오늘까지만 유효한 도쿄에서의 일상, 내일부터 다시 시작인 서울의 일상.

떠나오기 전 켜켜히 쌓아놓았던 것들의 안부가 이제야 궁금해진다.



작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후코의 집 앞, ‘어서와’. 따뜻한 그녀의 한 마디. 그리고 삐걱삐걱, 나의 움직임을 따라 흘러나오는 나뭇결의 여전한 흔들림과 식탁 위의 몰캉한 무언가.


"생일 축하해"


왈칵, 쏟아져 내릴 듯. 안 그래도 요동치던 나의 마음이 더욱 소란해졌다.

나의 생일 축하를 위해 후코가 직접 만들어 준 호박푸딩. 제법 케익의 모양새를 한 호박푸딩은 시나몬 크림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릴 듯 부드럽고 달콤했다. 홋카이도에서 보내 온 호박으로 만든 푸딩의 맛, 여기엔 나를 위해 요리를 해 준 후코의 마음과 정성껏 호박을 키워낸 후코네 가족들의 마음까지도 모두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우린 평소보다 더 크게 웃고 떠들었으며, 그 누구도 내일의 안녕은 없는 것처럼 오늘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런 우리에게 아쉬움이란 없었으리라.


난생 처음 맛본 호박푸딩의
그 맛처럼 깊고 달콤했던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이 하얗게 지나가고 있었다.




* 글 : 블리
www.instagram.com/bliee_

* 사진 : 빅초이
www.instagram.com/big.bigchoi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소로소로
www.soro-soro.com

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시작은 브롬톤>을 쓴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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