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녁 6시가 다 되어 갈쯤에 요양병원 입구에 들어섰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나를 반겨주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충성! 근무 중 이상 무! 오셨습니까? 반장님!”
환자 진한길 씨가 나를 격렬하게 반겨주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 요양병원에 10년 동안 입원중인 장기환자다. 워낙 오랜 세월을 이곳에 있으니 삶의 낙이 없고 무료한 생활을 하다가 이거다 싶었는지 본인이 자처하고 ‘경비 부반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짧게 거수경례를 하고 원무과 사무실로 들어가 보고일지와 점검일지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지금 경비일을 한 지도 3개월이 조금 넘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20대 후반 죽기 전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해서 도전한게 요리사였다. 요리학원을 다니고 취업전선에 뛰었지만 그 어떠한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자 희한하게 오기가 생겼다. 전화가 안 오면 내가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다가 지금 다니는 요양병원 식당에서 면접을 보고 주방 조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역시 현실이었던 걸까? 내 이상과 달리 요리는커녕 환자별 맞춤 식단으로 나오는 각종 반찬들을 배식카에 넣는 일을 각 끼니마다 하고 그 외에는 청소와 대파를 쓰는 일 잡일 말고는 나에게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여기서 같이 일하는 분들은 다들 할머니뻘 이모들이라 변화를 싫어하고 힘든 일을 꺼려했다. 얼른 일만 끝내면 장땡이었기에 말만 번지르르 하지 일이 시작되면 항상 제자리였다.
주방에서 일한지 1년이 조금 넘어섰을 때. 일을 그만두고 일반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인터넷으로 취업시장을 들쳐보다가 갑자기 뉴스기사가 터져 나왔다. 코로나로 인해 웬만한 식당들이 줄줄이 폐업중이라고. 그렇게 병원 식당일은 연장되었다. 몇 년을 더 일하니 많은 것들이 서서히 변해갔다. 나보다 연차가 적은 분들이 직원의 반 이상이 되었고, 기존의 영양실장은 그만두고 옆에 있던 보조 영양사가 영양실장이 되었다.
그렇게 일에 치여 살다가 실장님의 추천으로 내 또래의 모임을 알아보다가 독서모임에 들어갔다. 그 모임은 내 인생의 방향을 살짝 틀어놓았다. 책을 읽는 재미와 글을 쓰는 재미를 알게 해준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글은 형편없었지만 좋은 분들과 함께여서 즐겁게 쓸 수 있었다. 때마침 코로나도 잠잠해지는 시기에 식당을 그만두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말이다.
글만 써서는 먹고 살 수 없었기에 무슨 일을 하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찾아보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경비원을 하면서 작가도 겸하고 있는 사람의 브이로그가 떴다. 그래 바로 이거다!
그만둔 지 8개월 만에 요양병원에 다시 돌아왔다. 조리원이 아닌 경비원으로. 나는 요양병원 야간 경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