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불행의 반대말?

by 배추흰나비

생활에서 만족과 기쁨을 얻은 상태. 마음과 생각 기분 모두 좋은 상태


‘행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생활에 만족이라. 직장에서 월급은 세금을 제하고 이백만원 이상에 8시간만 딱! 근무하고 출근 전 건강을 위해 수영을 하고 저녁에 남편과 산책을 하며 아들딸 공부는 전교 10% 안에 들고 근면 성실하여 선생님께 사랑받고 뭐 이런 기준이 있는 건가.


행복에도 조건이 있을까?

잔꽃, 들꽃을 좋아하는 나는 길을 가다가 작은 꽃을 발견할 때 행복을 느낀다. 몇 년 전 봄날, 외부에 있던 나는 회의 때문에 급히 팀장을 데리고 길을 걷다가 아파트 담벼락 아래 핀 봄맞이꽃을 보고는 작은 탄성을 지르며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팀장님! 이리와, 이리와 봐.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내가 멈춰서는 바람에 두어 걸음 앞서가던 팀장님이 눈이 똥그래서 왜 그러냐고 달려와선 내가 가리킨 하얀 봄맞이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나는 또 뭔가 했네요. 이게 뭐에요. 그냥 꽃이구만. 빨랑 가요.”

정말 이것 때문에 부른 것이냐는 눈길로 나를 보는데 따뜻한 봄볕에 앙증맞은 다섯 개 하얀 꽃잎을 내밀고 핀 모양이 귀엽고 예뻐서 걸음을 멈춘 내가 민망스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행복해지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때는 이렇게 사소한 일들이다. 살 것 없는 마트를 어슬렁거리다가 뒤꿈치 각질제거패드를 발견했을 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상아를 깎아 만든 것 같이 투명하고 명함 반만큼 한 직사각형에 하얀색 마름모가 올록볼록 촘촘히 모양 나 있는 것이 각질제거에 아주 효과적일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그 겉을 싸고 있는 구두주걱모양의 복숭아 빛 손잡이는 아주 물결모양으로 매끈하게 생겨서 남보다 작은 내 손으로도 꽉 잡고 발뒤꿈치를 싹싹 부비면 달걀 같은 뒤꿈치를 갖게 될 것 같았다. 삼천구백 원짜리 그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는데 세상을 다 갖은 것 같이 행복했었다. 숨쉬기도 벅찬 촘촘한 일정과 맞추기 힘든 마감 때문에 울상이던 내가 실실 웃으니 팀장이 무슨 좋은 일 있느냐 묻는다. 자기가 모르던 실적이 올라왔는지 궁금하단다. 내가 슬쩍 복숭아색 각질제거패드를 보여줬을 때의 팀장 표정이라니!!! 몹시 서운했다. 같이 즐거워해주고, 같이 웃어줄 줄 알았는데 어이없게 바라보는 표정이라니..

사실 그게 맞는 반응일 것이다. 불행한 내 마음을 감추려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인 것을 팀장은 알고 있었다. 오래된 이야기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일까.

불행은 늘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아서 불행만은 피해보자 애쓰던 날들이 있었다. 무언가 행복한 일들이 생기면 불안했다. 젊은 날의 나는 그렇게 앞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하려 애쓰며 살았더랬다. 행복이 뭔지 잘 몰랐다는 말이다.


어제 딸한테 톡이 왔다.

KakaoTalk_20220917_094358645.jpg


요즘, 나

좋다. 소소함을, 나른함을 , 게으름을 배우고 있는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이 맘을 잘 알아주는 딸이 있어서 행복하다.


keyword
이전 12화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