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음식은?

by 배추흰나비

회사 근처나 출장지에서 늘 점심을 사 먹다보니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한동안 도시락을 싸서 다닌 적도 있는데 갑작스런 출장이 생기거나하면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를 몇 번 겪다보니 그냥 사먹게 된다. 단 것도 잘 못 먹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식후 한 시간 동안은 비몽사몽으로 보내야하니 맛있는 점심을 먹는 일이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내가 가장 맛없게 먹었던 음식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내가 애기엄마로 불리고 있던 때 우리 집에 맡겨놓은 쌀이라도 있는 듯이 식사 때마다 와서 밥을 먹고 가는 아저씨가 있었다. 노총각이었던 아저씨는 늙으신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보다 우리 집이 더 편하다며 때가 되면 식당 오듯이 우리 집에 왔다. 먹던 밥상에 밥 한 공기 더 놓는 일이어서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아저씨는 미안했나보다.

“애기엄마, 내가 오늘 점심 때 맛있는 거 사줄게, 가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윗집 언니와 나는 아저씨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가는 동안 내내 아저씨는 정말 맛있는 것을 사 줄 테니 기대하라고 했다. 윗집 언니는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돼지갈비라며 그것보다 더 맛있는 거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말도 하지 말라며 가장 유명한 집으로 모시겠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한참 아기를 키우며 삼시세끼 밥 해 먹이느라 힘이 들던 때였으니, 오랜만의 외식에 들떠서 나도 우리가 먹게 될 맛난 음식에 대해 상상하느라 신이 났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옥천이다. 옥천이라면 한우가 유명하다.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지만, 꽃등심에 된장찌개라면 기대에 부응하는 메뉴이다. 한참 들떠서 윗집언니와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사이에 한 식당에 차를 대는데 ‘올갱이국’집이다.


“다들, 이런 것 못 먹어봤지? 올갱이국이 얼마나 맛있는데.”

하며 우리에게 올갱이국을 한 그릇씩 시켜주었다. 올갱이라 함은, 냇가 근처에서 살았던 어린 내가 심심하면 잡아 와 국을 끓여 먹던 다슬기가 아닌가!

올갱이국? 다슬기국이라.... 눈을 감고도 끓이것다. 다슬기를 잡아오면 박박 씻어서 물이 빠지게 소쿠리에 건져 놓는다. 한 삼십분 지나면 다슬기들이 고둥 속에서 얼굴을 쓱 내미는데 그때 된장을 풀어 팔팔 끓고 있는 국솥에 쏟아 붓는다. 그래야 다른 도구 없이도 알맹이를 빼 먹기 쉽다. 다슬기 국을 끓일 때는 파나 아욱을 넣으면 더 맛있는데 칼을 쓰면 맛이 떨어진다. 손으로 뚝뚝 끊어서 넣어야한다. 그렇게 끓여낸 다슬기국은 알맹이를 빼 먹는 재미도 있고, 시원한 국물에 밥 한공기 말아 먹으면 뱃속부터 마음까지 뿌듯해지는 음식이다. 내가 충분히 해 먹을 수 있고, 많이 해 먹은 음식이라는 말이다. <맛있는 거>라는 말에 내 맘대로 ‘고기’를 생각했던 나는 참담하기까지 했다.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는다며 신나는 아저씨와 반대로 고기사랑으로 유명한 윗집언니와 나는 조용히 올갱이국을 먹었다. 일부러 멀리까지 데리고 와서 사 주는 음식에 실망했다 말할 수는 없었다.


열 아홉에 취직을 해서 첫 회식이 생각난다. 회식을 하러 간다고 했다. 그때도 나는 고기를 먹으러 가나보다 생각했다. 새로 온 직원 환영파티라며 다들 들떠서 간 곳은 횟집이었다. 새로 들어온 나를 환영하듯 모두 를 맛나게 먹는데 회를 못먹던 나는 비싼 횟집에서 소라랑 꼬투리콩, 메추리알을 집어 먹고 온 기억이 난다. 삼겹살이 아닌것이 어찌나 화가 나던지....


차를 타고 오면서 아저씨에게 이제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맛없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어느 날 친구가 와서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때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었는데 그 뒤에 타랴. 한참을 타고 가는데 미치겠더라? 왜냐구? 겨울이었거든. 그런데 이놈이 가도 가도 서지를 않는 겨. 헬멧을 썼어도 겨울에 오토바이 타봤어? 귀때기는 떨어질라고 하지, 손은 시려워 죽것지, 몸은 꽁꽁 얼어 가는데 이놈이 한참을 달려서 간 곳이 어딘지 알어? 신탄진 지나믄 구즉이라고 있어. 어, 도토리묵 유명한데. 거기 가서 묵밥 한 그릇 먹고 왔네. 그놈은 ‘맛있지? 맛있지?’하는데 승질 같아서는 한 대 때리고 싶더라니까. 어쩌면 자가용 타고 가서 뜨끈한 국물에 말아서 내온 것을 먹었다면 또 맛있었을지도 몰라. 하여간 내가 묵만 보면 그날이 생각나서 확 묵사발을 만들어버리고 싶다니까.”

그나마 자가용타고 밖에 경치라도 보며 즐겁게 갔으니 묵밥보다는 올갱이 국이 낫다. 윗집 언니도 말을 보탠다.

“나도 얼마 전에 정말 맛없는 음식을 먹었었지. 아는 사람이 맛있는 거 사준대서 가는데 소갈비를 사준다는 거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돼지갈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소갈비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거지. 소갈비라니! 아마 돼지갈비보다 열배는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돼지갈비가 백배는 더 맛있어. 수진엄마도 소갈비는 사 먹지 마. 맛없어.”


다들 순진해서 맛있는 거 사준다는 말에 따라나서서는 실망이라니, 정말 우습다. 생각해보면 음식의 맛이라는 것이 아주 주관적이어서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없다. 나에게 맛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고약스런 맛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누구와 먹느냐, 어떤 상황에 먹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은 다르게 기억된다. 먹을 것이 많아진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어느 채널을 틀어도 먹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사람 모두가 맛있는 것을 찾아서 유람중인 것처럼 보인다. 나같이 새로운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주위의 권유로 새로운 맛을 접하고, 그 맛에 놀라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다 느끼해서 싫어하던 피자로 저녁을 때우기도 하고, 이름만 들어도 찡그렸던 추어탕 한 그릇에 여름을 이겨낼 힘을 얻기도 한다.

아직도 나에게 올갱이 국은 내 인생에서는 가장 맛없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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