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을 내가 모른다
“꺄악!!”
명절을 보내고 곤히 잠든 새벽. 딸의 비명에 벌떡 일어난 남편과 나는 딸 방으로 뛰어가다 미친 듯이 달려오는 딸과 마주쳤다. 딸은 귀를 감싸 쥐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지네가 귓속을 물었다고 말했다. 지네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남편은 파리채를 움켜쥐고 살금살금 딸 방으로 갔다. 뒤적이는 소리와 파리채를 힘차게 휘두르는 소리가 나더니 남편이 잡아 온 것은 어른 손가락 중지만큼 기다란 지네였다. 나는 딸을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가 귀에 소독약을 발라주었다. 물린 자국과 함께 피가 나고 있었다. 지네가 도대체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어른인 딸은 아이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프다고 했다. 아직 새벽 다섯 시. 큰일은 아닐 거라고, 아침이 되면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 맞자 했다. 아픈 걸 잘 참는 딸은 아니라고, 지금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피곤해 보이는 남편은 집에 있으라고 하고 나는 딸을 차에 태우고 병원 응급실로 가면서 괜찮냐고 물었다.
“엄..마..내..다..리..좀..만..져..봐.”
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참새처럼 쫑알쫑알 떠들어대기를 좋아하던 딸이 오래된 카세트 테잎이 늘어진 것 같은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말했다. 놀라서 다리를 만져보니 우둘투둘 오이 껍질같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만지는 사이에도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얼굴도 점점 부어오른다. 말을 하기 힘들단다. 기도가 부어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울면서 쌕쌕 힘들게 숨을 몰아쉬더니
“엄..마.... 앞..이.. 안..보..여, 숨..도.. 안..쉬..어..져..119...불..러..줘...”
두려움이 섞인 말, 죽음과 바로 대면하고 있는 목소리. 그리고는 딸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떨리고 무서운 마음에도 신호를 지키고 있던 상황판단 더딘 나는 그제야 비상깜빡이를 켜고 병원으로 무작정 달렸다. 구겨진 종이처럼 누워있는 딸의 이름을 수없이 불렀다. 나 어릴 적 일찍 돌아가신 엄마에게 도와 달라 외쳤다. 너무 무서워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딸의 몸에 여러 개의 선들이 부착되고 황급히 의료진들이 움직인다. 쇼크라고 했다. 지네 알레르기가 있단다, 딸에게. 여러 개의 수액들도 주렁주렁 매달렸다. 딸아이가 온몸을 덜덜덜 떤다. 본인 의지가 아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2차 쇼크가 오는 경우도 20%라고 해서 병원에서 다섯 시간을 있었다. 의사는 나에게 이제 괜찮다고, 걱정 말라며
“지네 알레르기가 있는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한다. 딸이 새근새근 잠이 들자 다리에 힘이 쭉 풀렸다. 타지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이 명절이라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 고향 집에 와서는 지네에 물려 생과 사를 넘나들다니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고, 어찌 알고 그 새벽에 꼭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는지 사람이 살겠다는 강한 의지는 무의식중에도 발휘가 되는구나 싶다.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위험이 곳곳에 널려있지만, 본능적으로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며칠 뒤면 또다시 명절이 다가오는데 집에 있을지 모르는 해충부터 소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