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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Jul 20. 2023

짐작과 진실, 그리고 오해

속단하지 마세요


주위가 소란해서 창밖을 보니 소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남편에게 이게 무슨 일일까, 비가 많이 와서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고 말했더니 창밖을 쓱 바라봤다.    

 

뱀 나왔나 봐.     


뱀? 진짜? 자기가 어떻게 알아?     


소방관들이 장화 신고 왔네. 그럼 뱀이야.     


우리 집에도 뱀이 한 마리 나온 적이 있어서 119에 전화한적이 있지만 그때 소방관들이 화를 신었는지 운동화를 신었는지 생각도 안 난다. 그때 남편은 집에 없었다.    

 

아, 벌 나왔나 보다.     


벌? 진짜? 아까는 뱀이라매.     


소방관들이 두꺼운 장갑을 끼고 채를 들었어. 그럼 벌이야.  

   

김이 팍 샌다. 이젠 소란한 밖이 궁금하지도 않다.     


이보오, 서방. 나는 짐작 말고 진실이 궁금한 것이오. 굳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러게 뭔 일 났나?’하는 동조 정도면 됩니다. 뭘 알려주려고 안 해도 됩니다. 당신이 나 처음 만났을 때 내 친구가 긴 팔만 입는 거 보고 담배빵 있지 않냐고 확신에 차서 묻던 그날이 생각나오!     


그 버릇 고친 줄 알았더니 아직 못 고친 모양이다. 짐작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만을 가지고 확신에 차서 진실인 듯 말하면 안 된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사건이 확대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지가 속출하는 것 아닌가.  

   



머리를 말리려고 드라이기를 켜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안 그래도 욕실 안에 있는 콘센트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고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하다가 드라이기를 가지고 나와서 다른 곳에 꽂아 보았다. 작동이 되지 않았다.      


자기야, 드라이기 다른 곳에 꽂아봤어? 아니면 욕실 콘센트에 다른 것 꽂아봤어? 어떤 이유로 드라이기는 고장이 나지 않고 콘센트가 고장 났다고 확신한 거야? 무엇 때문이지? 쓸데없는 것을 고칠뻔한 이유가 뭐지?     


남편은 민망한 얼굴로 드라이기를 들고는 전선을 땡겼다 놨다 한다.     

이건 편견에 사로잡혀 잘못된 짐작을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모호하다. 왜 자꾸 근거 없이 판단하는 건가. 누구나 잘못된 짐작으로 쓸데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좀 심하다. 왜 속단을 하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하다.     


우리가 처음 장사를 하겠다고 준비할 때 시간이 늦어져서 오픈할 빵집 근처 여관을 잡아서 들어갔는데 아기가 낯선 환경에 잠들지 못하고 울었다. 앵앵 우니까 피곤한 남편이 깰까 싶어 아기를 업고 밖으로 나왔는데 주인아줌마가 나한테 ‘애기 엄마가 아닌가 봐. 애기가 왜 울어.’라고 했다. 애가 울면 애가 아픈가, 낯선 곳이라 애가 잠을 못 자는구나, 날이 더워서 애가 잠을 못 자나 에어컨을 켜지 등등 상황에 맞는 짐작이 얼마나 많은가. 하다못해 아기는 원래 울어, 새댁이 힘들것네 라고도 할 수 있는데 대뜸 애기엄마가 아닌가 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잘못된 짐작은 쓸데없는 소문을 만들고 소문은 사실이 되어 사람들이 편견을 갖게 한다.     


딸이 또래보다 키가 커서, 아들이 나와 닮지 않아서, 내가 어려 보여서, 그리고 남편이 늙어보여서 만들어진 수많은 오해와 편견으로 동네아줌마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어 수군거림과 따돌림을 당했던, 잊고 있던 수모의 기억이-고장 난 드라이기 하나로 윙윙대며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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