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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Jan 16. 2023

냅둬, 그거라도 지맘대로 하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지인과 한정식집에 갔다. 많은 반찬이 나오고 뒤이어 메인 메뉴가 나오길래 그것을 놓을 자리를 마련하려고 반찬그릇을 몇 개 옮겼다. 점원은 내가 옮겼던 반찬그릇을 신경질 적으로 다시 원래 자리에 놓은 후 다시 자기가 자리를 옮겼다. 이래저래 근사한 한 상이 차려졌지만 기분이 나빴다. 내 기분을 눈치챈 지인은 그럴 때자신의 엄마가 한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냅 둬, 그거라도 지 맘대로 하게.


내가 갓 시집을 왔을 때 시아버지는 80세이셨다. 새색시가 시아버지 밥상 차려드린다고 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 준비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드리면 한번 쓱 둘러보시고는 '나 이거 안 먹는다'하시며 반찬 그릇 몇 개를 밥상에서 휙 밀었다. 그러면 반찬그릇은 알까기 하는 바둑알처럼 쭉 미끄러졌는데 그러다가 반찬그릇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었다. 잘 해보려는 마음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 몹시 서운했다.




밥을 차릴 때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 고기를 볶았다든가 하는 메인메뉴는 한가운데 놓는다. 계란찜이나 나물은 딸 앞쪽에 놓는다. 계란말이나 소시지볶음등은 아들 앞쪽에 놓는다. 겉절이를 하면 남편 앞에 놓는다 등이다. 어차피 한상이라 아무 데나 놓아도 젓가락 가기가 어렵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각자 좋아하는 반찬이 있으니 되도록 그 사람 가까이 둔다.


언젠가 아들이 자기 앞에 놓인 반찬그릇을 들어 '나 이거 안 먹어'하며 멀지 감치 옮겼다. 깜짝 놀란 남편은'엄마 그 말 제일 싫어하는 말이야!'라고 외쳤지만 이미 나는 옛일까지 떠올라 순식간에 분노에 차 버렸다.  내가 차린 반찬에 절대 손대지 말라고 버럭버럭 화를 냈다. 아들이 나름의 이유를 말했지만 별로 생각도 안 난다.


과연 내 맘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산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내가 내 맘대로 하겠다고 맘먹어도 도대체 되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김밥이라도 내 맘대로 썰어보자고 어슷어슷 썰었다간 식구들한테 핀잔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 맘대로 하고 사는 사람을 보면 가끔 질투가 치민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어떻게 자기 맘대로 하고 살까!



한식당에 그녀도 그랬나 보다. 자기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나 보다. 반찬이라도 자기 맘대로 놓아보고자 했더니 손님이라는 사람이 또 자기 맘대로 막 옮기는 거다. 짜증이 날만하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불판을 휘휘 내젓는 손님을 본 닭갈비집 사장님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혹시 내가 무언가를 만지거나 행동한 것에 대해 화를 내는 자녀나 음식점의 점원이나 회사의 상사가 있다면 분노하지 말고 이해해 보자. 음 되는 일이 없으신가 보군요.


냅둬, 그거라도 지맘대로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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