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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Apr 21. 2022

아빠가 되는 시간을 기록하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취업 특강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당시 강사가 김신완 PD님이었다. 그는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며 그때처럼 간결하고 명확하게 문장을 지어가고 있었다. 그의 서재를 뒤적거리다 브런치 북 당선작인 '아빠가 되는 시간' 이라는 책을 접했다. 나도 이번에 브런치 북 공모를 했고, 또 아빠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시점이기도 해서 이 책을 읽어 보았다.


와이프와 자녀 계획을 세웠지만 육아가 두려운 내게 이 숙제를 지도해 줄 과외 선생님이 필요했다. 가끔 또래 아빠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육아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울뿐더러, 그렇게 소중한 시간에 육아 이야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진득하게 앉아서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될 많은 이야기들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선행 학습은 무의미하고 부딪혀 봐야 안다고 하지만 분명 그런 건 있다. 지나고 보니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더라 하는 것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이 선택을 내린 이유.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선택을 한 나를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신념 같은 게 필요했다. 


와이프는 자녀 계획에 적극적인데 나는 그만하지 못하다. 음식이나 건강에도 항상 와이프가 먼저 신경을 쓴다. 그녀는 전보다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쑥즙과 복분자, 각종 영양제도 챙겨 먹고 있다. 나도 식단 관리와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고, 요즘엔 새벽 조깅도 시작했지만 그것은 나와 와이프를 위해서지 아직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를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다. 자식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어느 날 수치심에 못 이겨 이 글을 지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  이미 아빠가 된 이들은 아이가 주는 행복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을 가늠해야 될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도 와이프와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고 있다.


오히려 공감이 가는 부분은 그들의 피로감이다.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많이 경험해 봤으니까.  한 생명이 자라서 독립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 더 이상 나를 위한 방랑이나 모험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 특히 내가 부모와 겪은 어려움만큼 다시 아이와 그 고단한 게임을 치러야 한다는 것. 이 몇 마디 문장으로도 짐의 무게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육아가 주는 행복감은 잘 와닿지 않는다.  지친 하루의 끝에서 같은 침대에 누운 딸아이가, 문득 감은 눈을 뜨고 '아빠 사랑해요' 라고 말하며 볼에 입을 맞추어주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고 부모님과 떨어지는 게 싫었다. 분리 불안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남을 가질 때마다 이별을 생각하곤 한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져서 더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쉽사리 입양을 못하는 이유는 혹시나 그것들이 내 옆에 있어서 불행해지거나 또는 내가 그것들을 너무 사랑해서 겪게 될 이별의 슬픔이 두렵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잔잔히 채워져 있는 사랑은 마치 댐에 저장된 물처럼 언젠가 같은 크기의 슬픔으로 밀려올 것이다. 내 마음에 더 많은 사랑을 채워 넣는 것은 정말 깊이 고민해 봐야 할 일인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만큼 깊게 고민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좀 더 인간적인 면모일까.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그 누구도 이별이 두려워서 사랑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용감한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사랑을 하겠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지금 나는 용기가 부족해서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고민들을 담아 작가님에게 편지를 썼고 며칠 뒤 답장이 왔다. 어렸을 때부터 고민과 생각이 많은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자주 해줬던 말이기도 하다. 인생을 너무 가늠하며 살지 말라고. 그리스인 조르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을 읽으며 주저 없는 삶을 동경했고 작은 것들을 시도해 보며 이십대를 보내왔다. 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가늠할 수 없는 것에 몸을 던지는 것은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이별이 있기에 삶이 소중한 것이고 이 소중한 삶을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은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모험이라는 것은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이고 어려운 선택을 과감히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 모험에 따르는 댓가가 사랑의 손실이 아니라면, 내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들이 내 선택 하나로 사라져버릴 것이 아니라면, 인생은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것들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 유튜브 콘텐츠 중 행위예술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영상을 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같은 방식으로 살다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삶은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해결책은 제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제가 알지 못하는 걸 하는 것입니다.


내 나이 서른둘,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대학교 진학, 취업, 결혼, 그리고 앞으로 가장이 되는 것까지. 누구나 비슷한 일생을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나이를 하나씩 먹으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은, 특별한 무언가가 되는 것보다 평범한 이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여 하루하루를 일기장에 적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아빠가 되지만 나는 그것을 또 다른 도전이자 이전의 나로부터의 탈피라고 여기고 앞으로 마주할 다양한 삶의 양상들과 감정들을 또다시 기록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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