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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Apr 24. 2022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나눈 대화


작년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 지으려고 산엘 다녀왔다. 매년 연말이나 연초에 의식을 치르듯 등산을 가는데, 나에겐 그 의미가 크다. 등산을 하면서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나에게 일어난 감사하고 고마운 일들, 무엇보다 큰 불행 없이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삶에 감사를 느낀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 모셔둔 근심, 걱정들도 오래된 것들은 좀 내다 버리고 오려는 생각도 있지만 매년 사라지지 않는걸 보면 그냥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도.


아침 8시 쯤, 덕주사 근처에 주차를 하고 한 걸음을 딛는다. 바람이 꽤 차게 불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스산한 기운이 옷깃을 파고 든다. 이런 쓸쓸함 속에서 깊은 망상에 파묻히는 것은 나의 지독한 취미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등산을 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자녀 계획을 세웠으니, 언젠가 내 아이가 될 존재가 미래에 있을 것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는 존재하는 그 아이. 그 친구를 머릿 속에 떠올려 보았다.


그 모습은 아마 내가 바라는 모습일 게다. 그렇지 않고는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특정한 모습이 아닌 그 존재 자체를 떠올려 보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그것은 뭐랄까, 하나의 신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종교인들도 신은 존재한다는 믿음 하에 기도를 드리지만 나는 등산을 하는 동안 존재하지도 않는 그 친구를 마음 속에 떠올린다. 이렇다 할 추억도 없고 생김새도 모르는, 부재의 존재와 대화. 혼자 숲 속을 거닐고 산을 오르며 '나의 아이가 될 존재'를 생각하고, 그것이 단순한 상상이나 떠올림 이상으로 느껴진 이유는 언젠가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느릴 뿐이지 이 아이의 답변은 우주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혜성처럼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 모두가 참 신비로웠다.


그 친구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다. 언제 쯤 올 것인지, 어떤 걸 좋아할 것이며 나와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설산의 풍경을 네가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지. 과연 그것은 반가운 일일지. 실내에서 작품 감상하는 걸 좋아하는지, 외부 활동을 좋아하는지, 해외 여행은 어딜 가고 싶은지, 유튜브 취향은 무엇인지, 운동은, 나처럼 눈물이 많은 편인지, 집중력은 괜찮은지.


나는 언젠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을 조금만 빨리 돌리면, 그것은 독백이 아니라 담화가 된다. 그리고 오늘 그 반짝이는 첫 마디가 나의 세상에 밝은 빛을 내며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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