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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May 05. 2022

[임신5주] 아기집을 보고 왔다.


또치야 안녕, 내가 널 처음으로 본 건 네가 4mm 정도 되었을 때야. 요즘엔 과학 기술이 발달되어서 벌써 너를 볼 수 있단다. 너를 두 눈으로 본 순간 밀려오는 감동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었어. 네 존재는 우리에게 의미가 굉장히 크거든.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네가 좀 더 자라면 설명을 해줄게. 한 마디로 말하면 너와 함께 우리도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야.


너는 엄마의 뱃속에 집을 지어 자라고 있었단다. 그걸 아기집이라고 하더라고. 네 엄마가 될 혜련이의 뱃속에 집이 생겼다는 것도 참 신기해. 거기서 뚝딱뚝딱 너만의 집을 짓고 있었구나. 김혜련은 네 엄마의 이름이야. 이름도 예쁘지? 나는 혜련이라고 불러. '자기'라도고 하는데 그걸 애칭이라고 해.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를 특별하게 여기고, 특별하니까 특별한 방식으로 부르고 싶은 거야. 또치는 아빠 임건영과, 엄마 김혜련이 서로 너무 사랑해서 나온 사랑의 결실과도 같은 거야.


세상엔 기적 같은 일이 참 많거든? 근데 생각해보면 가까운 곳에서도 기적 같은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그게 뭔지 간단히 설명해볼게.

  일단, 아빠가 태어났어. 아빠도 또치처럼 아빠의 엄마 뱃속에서 집을 짓고 살다가, 세상으로 나와서 30년을 살아왔어. 그리고 같은 시기에 비슷하게 태어난 서울 토박이 출신의 여자친구를 만났단다. 그게 네 엄마인데, 엄마를 만난 것도 참 기적 같은 일이야. 사실 아빠는 대학교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지만 처음엔 적응을 잘 못해서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었거든. 그때 아빠가 광주로 돌아갔으면 엄마도 못 만나고 또치도 못 만났을 건데, 이렇게 된 건 정말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게다가 아빠가 운 좋게 취업을 하고 결혼도 했단다. 요즘 세상에서 이 두 가지가 참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리고 또치까지 찾아왔어. 엄청난 기적과 행운이 아니었으면 엄마 아빠는 지금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아빠는 앞으로 또치와 함께할 생각을 하면 너무 설레어. 하지만 나도 아빠를 처음 해보는 거라서 두려운 마음도 있어, 그렇게 생각이 복잡해질 땐 등산을 가곤 한단다. 아빠가 이상하니? 너도 다음에 나랑 같이 가게 될 거야. 아빠는 이렇게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어. 그럴 땐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야. 덕분에 월악산 정상에서 너에게 미리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어.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네가 정확히 저 어둠 어느 곳에 있는진 모르지만 그것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으면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 산을 오르며 너를 생각하면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어. 별이라는 건 말이야. 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는 빛인데 특히 어두운 저녁에만 반짝거릴 수 있어. 그게 다 주변이 어둡기 때문이야. 그래서 더 밝아 보이는 것이야. 그것은 또치가 컴컴한 엄마의 자궁 속에서도 밝게 빛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란다.


나도 엄마, 아빠가 있어. 너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되겠지. 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말은 영어로는 grandmother, grandfather 라고도 해. 여기서 grand는 '멋진'이라는 뜻이거든? 그래서 꼭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진 않아도 돼. 네가 태어날 나라는 한국이라는 곳인데 여기는 유교 사상이 깊은 곳이야.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하면 좀 나이가 많이 든 기분이거든. 그러니까 영어식으로 '멋진 엄마', '멋진 아빠'라고 불러도 된단다. 아무튼 네 멋진 엄마, 멋진 아빠에게도 말씀을 드렸는데 두 분 다 너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단다.


또치가 찾아오면서 아빠가 새롭게 느껴지는 한 가지가 있다면,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기분이 좋아진단다. 그래서 또치에게 편지를 쓰는 이 순간이 너무 즐거워. 스트레스가 풀리는 시간이야. 다행히 아빠 회사가 워라밸이 그렇게 나쁘진 않아서 집에 와서 이 정도 쓸 여유는 있네. 아빠가 글 쓰는 걸 좋아하기도 말이야. 그래서 문학청년이라고 자칭하는데 이 건 네가 좀 더 크면 자세히 더 알려줄게. 또치야 따뜻한 엄마 집에 들어온 걸 축하하고 나중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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