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치야 안녕, 오랜만에 또 편지를 쓰네. 편지를 쓸 땐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게 되잖아. 근데 참 묘한 건 침대 옆에 누운 엄마 뱃속에 네가 있는 걸 알면서도, 지금 쓰는 이 글을 읽을 때가 되면 너는 꽤 커있겠지? 그때는 아빠가 이름도 지어 줬을 거야. 그 아이가 지금 혜련이 뱃속에 있다는 게 참 신기해. 귀여운 또치가 여러 명 있는 기분이야. 아빠는 그 모든 또치들을 사랑할 거야.
요즘 아빠는 태아 또치에게 매일 시를 읽어주고 있단다. 네가 기억할 순 없겠지만 그렇게 매일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어. 근데 신기한 건 아빠가 시 두 편 정도를 읽으면 네가 움찔움찔해. 어쩌면 정말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아빠는 또치가 태어나도 매일 한 편씩 시를 읽어줄 거야. 시라는 건 글자로 그리는 그림 같은 거야. 시를 읽다 보면 그 속에 있는 낱말들이 머릿속에서 그림처럼 펼쳐진단다. 아빠가 지금 또치를 생각하는 것처럼 또치도 아름다운 낱말들을 머릿속에 많이 떠올려보길 바라. 또치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돌고래가 되어 푸른 바다를 뛰어 놀 수도 있어. 나비처럼 예쁜 꽃을 따라 팔랑거릴 수도 있고. 그러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빠가 읽어 주는 시에 귀를 기울여 주면 아빠는 참 행복할 것 같다.
또치의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아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걱정을 하게 돼. 과연 또치가 살아가게 될 세상은 어떨까. 그때는 정말 운전 중에도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자율주행이 진화되었을까? 또치가 진로를 잘 선택하고 진정한 꿈을 찾을 수 있게끔 교육 제도가 개편이 될까?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지. 그런 생각들 말이야. 아빠가 최근에 뉴스를 봤는데 우리나라 출산율이 역대 최저라고 하더라고. 전 세계에서도 1위래. 아빠 친구들은 지금이 아이를 낳아서 양육하기 힘든 시기라고 생각하나 봐. 참, 역사적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 편한 시대가 있었는지 모르겠어. 항상 힘들고 불행하지 않았을까. 다만 지금 더 겁을 먹은 이유는, 사람들이 더 똑똑해지고 가까워져서 그런 것 같아.
그런 사회 속에서 또치가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아빠도 염려가 돼. 그럼에도 생명이라는 것 자체로서 존재의 가치가 있고, 또 아빠의 이기적인 마음에(그 마음은 아빠도 어쩔 수 없는 것이란다) 그리고 용기를 더해서 또치를 세상에 초대하기로 했어. 이건 엄마, 아빠의 선택이 아니라 또치가 엄마, 아빠를 선택한 거야.
이런 세상에서 엄마 아빠는 또치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혜련이는 성격이 참 긍정적이라서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고 있어. 자신감도 있고. 근데 아빠는 반대로 걱정이 많단다. 뭔가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하는 건 아빠의 몫이야. 그래서 엄마랑 아빠랑은 죽이 잘 맞아. 아빠 생각에 이 세상에 잘 적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은, 읽기와 쓰기 인 것 같아. 글을 읽거나 듣고, 그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거지. 머릿속에서 상상하거나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해서 글로 짓는 것.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아. 아빠가 부족한 것이기도 하고.
단순히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관찰하는 것 이상으로, 느끼고 표현해보는 거야. 와, 또치야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해주신 말을 너에게 그대로 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는 아빠한테 항상 이 이야기를 하셨어. '지식 + 지혜 = 현명' 이라고. 지식은 책에서, 지혜는 경험에서 얻을 수 있다고 하셨지.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하셨어. 아빠는 거기에 더불어 그 지식과 지혜를 표현하는 것도 참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 어휴 또치야, 아빠가 자꾸 부담을 주는 것도 같구나. 이게 부모의 욕심이라는 건가 봐. 하지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을 거야. 아빠는 그저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야. 엄마 아빠는 하루에 한 시간씩 읽고 쓰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 사실 이건 우리 둘 다 잘하는 일이야.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내일부터는 책상 앞에서 엄마랑 마주 앉아 노트에 손 글씨로 쓰면 돼. 그러면 자연스레 엄마 아빠를 보고 또치도 배울 거라고 믿어.
또치야 아빠가 이번엔 너무 진지한 이야기를 했구나. 미안, 첫 편지를 쓸 땐 이 세상을 소개하듯 쓰려고 했는데 막상 쓰다 보니 대화의 깊이가 깊어지는 거 있지.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너도 커가고 있는 기분이야.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대 별로 다른 또치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아. 아마 이 글을 또치가 음, 스무 살이 넘으면 조금 이해가 되려나.
또치야, 이제 아빠는 엄마 배 만져주러 가야겠다. 또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