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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Sep 12. 2022

[임신32주] 아빠는 잘하고 있는 걸까?


또치야 아빠야, 오늘은 또치를 보러 병원에 다녀왔어. 초음파 사진을 찍었는데 팔 베개를 하듯 얼굴 한쪽을 가려서 다 보여주지 않더라고. 엄마를 닮은 걸까? 혜련이도 맨날 한쪽 팔을 괴고 자거든. 잠버릇은 엄마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예전에 대만 여행을 갔을 때 투어버스에서 잠이 들었는데 산사태가 났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대. 이모들이 말해줬는데 대단하지? 또치도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


또치 얼굴을 보니까 기분이 좋았어. 태동으로만 느끼던 걸 직접 영상으로 보면 너무 신기해서 또 보고 싶어. 점점 얼굴 라인도 뚜렷해지고 이제 엄마 뱃속을 빈틈없이 꽉꽉 채웠더라? 또치가 벌써 이렇게 크다니 아빠는 매 순간이 신비롭고 경이로워. 이제 9월이니까 다음 달에 우리 만나게 되네. 아빠는 또치의 손가락, 발가락, 눈, 코, 입, 모든 생김새 그리고 또치와 함께 할 미래가 너무 궁금해. 또치 기분은 어떻니? 엄마 아빠 얼굴 볼 생각에 설레진 않니? 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빠는 다 기록해 놓을 거야. 또치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알려주고 싶고, 꼭 알았으면 좋겠어. 그 의미만으로도 또치의 삶은 가치 있는 거란 걸. 아빠는 아직 또치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또치를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점점 사랑이 깊어져.


엄마가 또치를 위해서 며칠간 모빌을 만들었단다. 참 대단하지 않니?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며 부직포와 솜을 사서, 도면을 프린트해서 직접 오리고 실로 꿰매어 솜을 채워서 예쁜 모빌을 만들었어. 엄마가 손재주가 좋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또치를 위한 모빌이야. 아빠가 이렇게 글을 쓰며 또치를 생각하듯이, 엄마도 모빌과 인형을 만들며 또치를 마음속에 품었단다.

  저번 추석 때 아빠가 또치 방을 옮겨 놨어. 거기에 또치가 태어나면 필요한 용품들을 하나씩 준비해뒀단다. 모빌을 완성한 김에 침대를 설치하고 한 번 달아봤는데, 아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모들이 선물해 준 곰돌이 인형, 토끼 인형과 함께 또치의 잠자리를 꾸몄는데 또치가 그 사이에 예쁜 공주처럼 잠들어 있을 생각을 하니 한 동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고. 얼마나 귀엽고 예쁠까. 또치가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근데 아빠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엄마는 이렇게 또치가 태어나면 가지고 놀 장난감을 만들고 있는데 아빠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사실 또치가 생기기 전에 아빠는 아빠의 삶에 애착이 깊고 욕심이 많았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것 저것 벌려놓은 일도 많아. 아빠는 기타도 잘 치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어. 또치가 하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해볼 수 있도록 돈도 많이 벌고 싶고 거기에 아빠의 재능을 활용해보고 싶어. 하지만 또치가 태어나면 또치에게 집중해야 하고 포기할 것들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해. 또치가 태어날 때 까지도 아빠의 욕심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참 못마땅해. 지금부터라도 그런 시간을 줄이고 또치를 위해서 책이라도 읽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빠의 아빠 있지, 또치한테는 할아버지겠지. 할아버지는 이제야 그러한 삶을 맞이하셨어. 할아버지 나이가 곧 예순이 되시는데 며칠 전에 명예퇴직을 하셨단다. 회사에서 자그마치 34 년 동안 일을 하시고 마침내 옷을 벗으신 거지. 할아버지 회사 생활에도 많은 고비가 있었다는 걸 아빠는 기억해. 할아버지가 능력이 참 좋은데 회사에서 알아주지 못할 때가 많았단다. 그런 할아버지가 아빠와 고모를 다 키워 놓고, 이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회사 일을 그만두셨어. 할아버지의 진짜 삶이 시작된 거지.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는 창고를 볼 수 있어. 할아버지 놀고 싶은 이야기만 들어도 하루가 부족할 거야. 아빠는 그런 모습이 참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 세상에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이거든. 아빠는 또치가 태어나기 전에 그런 것들을 찾아 세상을 헤매고 다녔어. 또치도 분명 아빠의 그런 모습을 좋아할 거야. 하지만 그 시기가 되려면 적어도 아빠 나이인, 30 년은 지나야겠지? 30 년 후의 또치는 30년 후의 또치를 사는 거고, 지금의 또치는 지금의 또치를 사는 거니까.

  

또치야. 아빠가 갑자기 또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얼른 마무리하고 엄마 감자채 볶음 하는 거 도와주러 가야겠어. 또치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감자 수제비를 참 좋아했거든. 멸치 육수를 내어 감자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고, 밀가루 반죽을 뜯어서 끓여 먹는 음식을 수제비라고 해요~ 또치 아가씨. 따라 해 봐 또치야. 수. 제. 비! 왠지 또치도 좋아할 것 같아. 들깨가루를 듬뿍 넣으면 푸슬푸슬한게 따뜻한 죽 같고 맛있어. 그래서 감자 한 망을 사서 수제비를 끓이고 남은 감자는 반찬으로 감자채 볶음을 만들고 있단다. 냄새가 고소한 게 배가 고프려고 한다. 빨리 가서 도와주려고 엄마한테 얼마나 했는지 물어봤는데, 어라. 엄마가 이미 다 끝내버렸다 또치야. 아빠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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