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또치야. 이 문장은 아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들었던 문장이야.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할머니가 아빠 논술 공부를 시키려고 독서토론 수업을 신청했었거든. 아빠의 초등학교 친구들까지 포함해서 4명이서 저녁 먹은 다음 모여서 논술 수업을 들었어. 그때 선생님이 첫 수업 때 해주신 말이 있는데 그게 저 문장이야. 사랑하면 알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아빠가 이 문장을 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그 순간은 참 생생하게 기억난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이 문장을 꼭 기억하라고 하시면서 몇 번이나 같이 따라 읽었어. 먼 훗날 우리가 성인이 되면 이 말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하셨지. 그래서 아빠는 뭣도 모르고 이 문장을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살았단다. 정말 문득문득, 이 문장을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하는 생각과 함께 저게 무슨 말일까? 궁금해하며 마른하늘에 잠깐씩 펼쳐 보았다가 다시 주머니 속에 담아두곤 했단다. 그런데 최근에 이 말이 자꾸만 아빠 머릿속에 맴도는 거야. 그래서 천천히 생각을 해보니, 저 말은 아빠가 또치를 만나게 된 이유인 것 같아.
아빠가 사는 시대는 출산율이 엄청 낮단다. 사람들이 결혼도 잘 안 하게 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졌어. 세상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지. 슬픈고 힘겨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그런 사건들을 자주 접하고 감정을 이입하다보니 두려운 거야. 어쩌면 사랑을 하기가 두려운 것 같아. 그것을 잃게 될까 봐.
아빠도 물론 그런 걱정이 되었어. 게다가 엄마 아빠의 삶에 또치의 존재를 어떻게 느껴볼 기회도 없었어.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가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느낌이 무엇인지 몰라. 그래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거야. 그럼에도 아빠의 깊은 마음속에는 또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 아빠는 또치를 왜 만나고 싶은 걸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참 어렵고 힘든 일인데 말이야.
근데 이렇게 또치를 위해 편지를 쓰면서 답을 찾았어. 답은 저 문장 속에 있었어. 아빠의 인생은 한 번 뿐이라고 생각해. 한 번 뿐이라는 것은 소중하다는 이야기야. 또치의 삶도 그럴 거고 엄마의 삶도 그럴 거고 아빠의 삶도,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자신의 삶이야. 아빠가 엄마나 또치를 위해 희생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 조차 아빠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아빠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거니까. 이 소중한 삶을 의미 있게 더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법은 뭘까. 또치를 마음속에 품으면서 깨달았지. 아, 더 큰 사랑을 하는 거구나.
사랑을 하면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새로운 것을 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그 세상은 또치가 태어나기 전과는 다른 세상일 거야. 아빠는 아빠의 소중한 삶을 그렇게 여러 세상을 탐험하며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며 살아볼 거야. 이 세상을 달리 살아보는 것, 그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시작되는 것 같아.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다면 아빠의 삶을 성공한 삶이고 의미 있는 삶이고 행복한 삶일 거라고 생각해.
또치가 사는 세상에도 많은 고민과 근심이 있을 거야. 또치도 한 동안은 아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또치가 많은 사랑을 받고 또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치의 소중한 삶을 후회 없이 살 수 있을 거야. 또치야 사랑해. 또치와 함께하는 삶, 새로운 세상이 너무 흥미진진하고 기대돼. 길지 않은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분일초도 아까울 정도로 또치에게 사랑을 줘야지. 아빠가 또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가장 본질적인 것은 또치를 '사랑'하는 일이야.
이 사랑하는 마음을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게끔, 느껴지게끔 이렇게 글로 남겨 놓을게. 또치가 아빠 나이가 되면 지금 아빠가 또치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느껴주길 바라. 빨리 만나자 또치야. 아빠가 사랑의 바구니를 듬뿍 채워 놓고 있단다. 또치는 이 바구니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거고, 누구보다 사랑받는 누구보다 소중한 그리고 그걸 스스로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또치야, 엄마가 배가 많이 불러왔어. 우리 또치가 엄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나고 있나 봐. 이제 날씨가 선선한 가을이 되었어. 가을에는 바깥 풍경이 참 아름답단다. 또치에게도 계절의 아름다움을 많이 알려줘야지. 자연 속으로 여행을 많이 다닐 거야. 지금도 엄마를 데리고 예쁘고 평화로운 곳에 많이 가보고 있어.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또치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는 또치를 돌보느라 좀 더 바빠지겠지? 그래서 더 많이 다니는 중이야. 엄마 아빠 둘 만의 시간을 이렇게 많이 보내는 것도 이해하지?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많은 대화를 할수록 또치와 함께할 시간도 더욱 깊어져 갈 거야. 예쁜 꽃도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테니까 엄마 뱃속에서 또치도 느껴봐. 세상에 태어나면 또치가 느낀 기분을 아빠한테 꼭 알려줘.
이제 다음 편지를 쓸 때는 또치를 만난 후 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아빠의 기분을 어떨까?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또치야. 그래도 지금 기분 좋은 긴장감을 잘 유지하고 있을게. 그럼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