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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Oct 30. 2022

2022.10.26 또치를 처음 만난 날


또치가 태어나기 하루 전 날 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전에 또치에게 시를 한 편 읽어주고 - 윤동주의 '소년'이라는 시였어. '순이'라는 이름을 '또치'로 바꿔서 읽었단다. - 엄마는 깊이 잠들지 못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렸어. 또치가 태어날 신호라고 볼 수 있는 이슬이 비추기 시작했고 미약한 진통도 느끼고 있었지. 혹시 몰라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의 진통 주기가 좀 더 짧아지면 한 번 더 전화를 주라고 하셨어. 알겠다고 하고 아빠도 잠깐 눈을 붙였단다. 그러다 새벽 5시쯤 엄마가 아빠를 깨웠어. 진통 주기도 짧아지고 통증의 크기도 조금씩 커지고 있어서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고 했지. 아빠는 부랴부랴 짐을 쌌고 텅 빈 도로를 긴장감으로 가득 채우며 병원으로 향했단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말이야.


그렇게 6시쯤 도착했고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바로 진료실로 데려가셨어. 한 30분 정도 걸렸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지. 정말 신호가 온 건지,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건지 말이야. 그렇게 얼마 정도 지났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아빠를 선생님이 들어오라고 하셨어. 엄마는 병원 가운을 걸치고 수액을 맞으며 침상에 누워있었단다. 드디어 또치를 만날 준비를 하는 거였지. 그게 오전 7시 정도였어. 아빠는 또치가 태어날 때 엄마 곁에 있고 싶어서 가족분만실에서 분만을 하겠다고 했어.


8시가 좀 지나 가족분만실로 자리를 옮겼고 촉진제를 투여하기 시작했어. 또치가 엄마 몸속에서 열 달 동안 집을 짓고 아늑하게 잘 지내왔지? 이제 엄마 아빠를 만나러 세상에 나오려면 '문'이 필요하잖아. 근데 그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대. 그래서 촉진제를 엄마의 몸속에 넣어서 또치가 잘 나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주는 거야. 약을 넣긴 했지만 이 문을 여는 건 순전히 엄마의 몫이야. 문이 조금씩 열릴수록 엄마의 표정을 점점 더 일그러졌어. 정말 험난한 과정이었단다. 진통은 주기적으로 찾아와 엄마의 몸과 마음을 무너트리고 갔지. 참을성 많은 엄만데도 그렇게 몸을 베베꼬며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고 아빠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어.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건 손을 꼭 잡아주고, 숨소리를 맞춰주고, 힘내라고 속삭여 주는 것. 그게 전부였어.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단다. 엄마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었고 그것은 온전히 엄마가 받아내야 하는 것이었어. 아빠는 30분 단위로 조금만 버티자, 10분만 더 참고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보자, 그렇게 버티고 버텼지. 엄마한테는 그 10분이 10시간 같았을 거야.


그렇게 이 악물고 고통을 견디며 12시쯤 되었을까. 엄마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고 수술을 해야겠다며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달라고 하셨어. 그래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경으로 검진을 하는데 도중에 양수가 터졌어. 문도 꽤 많이 열렸다고 이제 아기를 만나보자고 하셨지.(암마는 여기서 더 참으라고 했으면 정말 수술을 했었을 거래. 수술은 또치가 문을 열고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또치를 모시러 들어가는 거란다.) 그렇게 간호사 선생님들이 들어오시고 전담 의사 선생님까지 출동했어. 침대 아래쪽으로는 엄청 분주했지만, 아빠는 의자를 끓어 당겨 엄마의 상반신 쪽으로 붙이고 엄마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어. 고통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마다 엄마는 호흡을 크게 들어마신 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힘을 줬어. 얼마나 힘을 줬던지 얼굴과 목, 쇄골까지 붉은 반점이 생기고 실핏줄이 터졌어. 낙엽처럼 바짝 말라버린 입술은 곧 터질 것처럼 검붉게 변했고 이마엔 땀이 비 오듯 흘렀어. 호흡이 잠깐 끝나면 작은 신음들이 흘러나왔어. 아빠는 그런 엄마 얼굴을 보면 호흡이 떨리고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아서 고개를 돌려버렸단다. 엄마가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계속 후- 후- 소리만 반복했지. 그렇게 연속으로 2번씩 힘주기를 8회 정도 했던 것 같아.  마지막엔 한 간호사분이 침대가 덜컹덜컹 흔들릴 정도로 엄마의 배를 온몸으로 밀어냈어.


2022년 10월 26일 오후 1시 19분. 그렇게 또치가 세상에 태어났어. 아빠는 엄마만 바라보느라 또치가 나온 줄도 몰랐어. 엄마가 '나왔다..' 라고 나지막이 얘기했고 그제야 또치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라고. 응애응애 또치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엄마를 보고,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귀에 속삭였어. 너무 잘했다고. 너무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정말 힘든 일을 해낸 거라고.

  또치야, 엄마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거야. 만화 영화 같은 거 보면 소중하고 희귀한 보물을 얻기 위해선 수수께끼도 풀어야 하고 괴물 하고도 싸워야 되고 어려운 주문도 외워야 하잖아, 그 과정이 엄청 험난한 거 알지? 또치를 만나러 가는 길도 마찬가지야. 엄마 뱃속에 너무 아름답고 소중한 보물을 품고 있다 보니까 그만큼 문을 열기가 어려운 거야. 엄마, 아빠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그 시간을 또치를 만나기 위해 함께 견뎌냈어.


다행히, 엄마 컨디션은 금방 좋아졌어. 또치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엄마는 고통에서 해방되었단다. 지금도 글을 쓰는 아빠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어. 아까 낮잠 한 숨 자고 저녁밥 먹고 또 누워 있는데, 왜 또 졸리냐며 아빠한테 묻는다. 왜 졸리기는,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었으니까 졸린 거지. 엄마도 이제 한 동안 회복 기간이 필요해.(사실 아빠가 조금 졸린 노래를 틀어 놓긴 했단다.)


또치야. 건강히 태어나줘서 고마워. 또치가 뱃속에서 나오고 바로 신생아실로 갔는데, 다시 또치를 만나기까지 노심초사했어. 지금도 사실 그렇긴 해. 혹시 또치가 어디 불편한 데나 아픈 데는 없는지. 아빠를 닮아서 아프게 태어나진 않을지. 근데 정말 다행히도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준 것 같아. 정말 고마워.


이제 곧 7시 30분. 또치 만나러 면회 가야겠다. 또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사랑스러운 아가야. 앞으로 아빠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줄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아이가 될 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을 기록해 놓을 거야. 이 기록물은 또치를 위한 사랑 그 자체야. 아빠는 또치를 사랑하면서 그 마음을 이렇게 차곡차곡 모아둘 거야. 그러니까 언젠가 아빠가 보고 싶은 날에, 아빠가 사랑을 줄 수 없게 될 때는 이 글을 꺼내서 읽어줘. 아빠의 사랑은 이 속에서 영원할 거야!


이렇게 또치를 향한 사랑 1권을 끝냈다. 아빠가 월악산을 오르며 또치를 처음 생각했던 순간부터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오늘까지 아빠의 마음을 이렇게 남겼어. 지금까지는 또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었고, 앞으로는 또치와 함께하는 여정을 기록으로 남길 거야. 아빠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듬뿍 담아서 말이야. 앞으로의 삶이 기대된다. 험난하고 우여곡절도 많겠지만 아빠의 삶은 또치라는 존재를 만나서 더 사랑이 가득할 거야. 그리고 그렇게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도 멋진 삶이라고 생각해. 아빠가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그럼 우리 잘해보자. 사랑해!


P.S 아 근데 또치야. 엄마가 뱃속에서 나올 때 왜 눈썹은 놓고 나왔냐는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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