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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Jul 31. 2022

[임신25주] 세부 태교여행을 다녀왔다


또치야. 네가 벌써 700g이래. 언제 이렇게 많이 컸니? 참 신기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mm가 채 안되었는데, 엄마 뱃속은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너를 수십 배로 키워낼 수 있을까. 바다처럼 넓은 곳도 아닌데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음식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걸 보면 너무 신비로워, 엄마의 몸은. 


엄마, 아빠는 또치가 태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떠나는 둘 만의 여행을 다녀왔어. 물론 또치가 태어나도 다녀올 수 있겠지만, 그때 가는 건 우리끼리 가는 게 아닐 거야. 그때 즈음엔 엄마 아빠의 머릿속에 또치가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커져서 여행을 가서도 또치 생각만 날 거야. 그래서 또치가 아직 세상의 빛을 보기 전이면 엄마 아빠가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엄마 거동이 더 힘들어지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어. 저번 편에서도 말했지만 이 세상에 큰 전염병이 돌아서 모두들 자기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야 했거든. 얼음 땡 게임처럼 말이야. 얼음이었던 사람들이 조금씩 땡! 을 외치면서 우리도 슬며시 다녀왔어.


몸이 무거워서 멀리는 못 가고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있는 '세부'라는 섬에 다녀왔어. 또치는 여행의 느낌이 뭔지 모르지? 또치가 태어나면 모든 것들이 새로울 거야. 엄마, 아빠의 모습도 파란 하늘도 예쁜 꽃과 푸른 나무들도 다 신기로울 거야. 왜냐면 처음 보는 것들이기 때문이지. 그렇게 처음 보는 것들은 우리의 마음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그림을 그려준단다. 그 그림이 있으면, 나중에도 꺼내볼 수 있고 상상을 해볼 수도 있어. 여행은 물감과 같은 거란다. 또치가 그림을 그릴 때 더 예쁘고 아름답게 그리려면 물감이 많으면 좋겠지? 아빠도 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그려보려면 많은 물감이 필요해. 그래서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새로운 색깔의 물감을 사오는 거야.


아빠가 다녀온 필리핀의 물감은 아주 새파란 하늘색이었어. 시원한 바닷물과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면 엄마, 아빠의 마음에도 깊고 푸른 바다가 차올랐어.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하늘의 물고기나 바다의 새가 된 기분이야. 그 기분에 더 깊이 빠져보려면 팔을 양 쪽으로 쭉 뻗어서 날개짓을 하면돼. 아빠는 바닷가에서 헤엄 치는 걸 좋아해. 이번 여행에선 엄청 큰 고래상어도 보고 왔단다. 다음에 또치와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잊지 못할거야. 또치에게도 그런 물감이 생기면, 살아가면서 고래상어가 하늘에서 수영을 하는 예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거야.


평화로운 리조트에서 매일 수영을 하고 시원한 망고 주스도 마시고,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 구경도 했어. 과연 또치는 물을 좋아하려나? 아빠는 정말 좋아해. 물속을 허우적거리는 기분이 너무 자유로운 거 있지? 바다 거북이처럼 유유히 헤엄을 치고 싶어. 그래서 수영은 못하지만 프리 다이빙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단다. 여기 써 놓은 짤막한 여행기는 아빠가 동영상으로 다 찍어왔어. 또치 보여주고 싶어서.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엔 엄마, 아빠의 마음을 담아 영상 편지도 남겼으니 또치가 어른이 되면 보여줄게.


돌아오는 길에 세 살배기 아기와 같이 여행을 온 가족들도 보였어. 그 언니는 되게 조용하고 비행기 안에서도 잘 자고 혼자서 잘 놀더라고. 그걸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되겠구나 싶었어. 아기 거북이처럼 주먹만한 가방을 등 뒤에 메고 분홍색 나시에 양갈래 머리를 땋아서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또치도 저렇겠지 싶었어. 그 생각을 하니, 우리 둘 만의 여행도 좋았지만 또치와의 여행도 또 색다를 것 같아. 그땐 또 다른 색의 물감이, 아빠의 팔레트에 칠해지겠지? 얼른 여행 가자 또치야. 아빠가 돈 열심히 벌어서 세계 여행 많이 시켜줄게. 또치가 조금만 얌전하게 해 준다면 더 빨리, 더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을 거야. 


그럼 아빠는 이제 엄마랑 케이크를 먹으러 나갈 거야. 점심엔 오리훈제 불고기를 먹었거든! 맛있는 디저트 집을 알아봐 놨단다. 또 편지할게 또치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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