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a솨 Nov 01. 2019

좋은 인연

하나가드리움 오피스텔


 처음부터 친구랑 둘이 살 생각이긴 했지만, 8평짜리 원룸 오피스텔에서 함께 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부동산 어플 '직방'에서 친구와 내가 미리 찾아본 집은 원래 투룸이었다. 친구도 나도 타인과 함께 사는 공동생활을 오래 해 왔었기 때문에, 같이 살더라도 독립적인 공간이 꼭 필요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방을 하루 종일 살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느꼈겠지만, 정말 쉴 새 없이 부동산 어플을 들락날락하다 보면 대략적인 시세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데,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우리가 갖고 있던 돈으로는 지상층 투룸을 구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밤낮으로 서칭에 서칭을 거듭한 결과 기어코 적합한 투룸을 찾아냈고, 그 매물을 등록한 공인중개사에게 바로 연락해서 그 집을 실제로 보기 위해 일정을 정했다. 토요일 오후 세시 대림역 3번 출구 앞.          



 그런데 약속한 당일. 우리는 바람을 맞았다. 아저씨인지 삼촌인지 우리 또래인지 모를 그 공인중개사가 잠수를 타 버린 것이다. 길 위에서 뻥진 우리 둘은 대안을 찾아야 했다. 이 세상에 공인중개사가 그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 후레지아 씨 발라먹는 수박 시베리아 허스키 같은 놈이라며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다른 공인중개사를 찾았다. 지금 바로 우리에게 시간을 내줄 수 있는 공인중개사를.          



 이번에는 직방에 등록되어 있는 매물 상태뿐만 아니라, 공인중개사의 얼굴까지 꼼꼼히 살펴봤다. 이 사람은 좀 얌챙이 같아 보여서 이건 허위매물일 것 같아. 이 사람은 너무 젊어서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애. 라며 우리끼리만 통할법한 나름의 논리들을 내세우며 신중하고 까다롭게 찾은 결과, 개그맨 김준현을 닮아 넉넉하고 푸근해 보이면서도 연륜이 느껴지는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공인중개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직방에서 그 방을 보고 연락드렸는데, 혹시 지금 볼 수 있겠느냐고.  다행히 김준현을 닮은 그 아저씨는 시간을 내실 수 있다고 하셨고. 그 덕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집을 보러 다닐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내가 살 집을 직접 찾으러 다녀본 것이었는데, 괜히 잘 모르고 어벙벙하면 공인중개사들이 괜히 좋은 집을 잘 안 보여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랑 사전에 우리 둘 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 같아 보이게 행동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또 너무 없어 보이게 행동하지도 말자고 약속을 했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처럼 보이면 공인중개사가 왠지 가성비 좋은 집들은 아예 보여주지도 않을 것 같았고, 반대로 돈이 너무 없어 보이면 비용에만 맞춰서 별스럽지 않은 집들만 보여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름 머리를 쓴다고 썼었는데 근거가 있는 생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함께 한 약속이니, 충실하게 약속을 이행했다.



 처음에 간 집은 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오래된 오피스텔이었다. 막상 가보니 차로도 10분이 넘게 걸리길래 속으로 여긴 안봐도 탈락이다 싶었는데, 공간 자체는 큼직큼직해서 둘이 살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벽지도 낡고 장판도 낡고 화장실도 쾌쾌해서 괜히 찝찝한 집이었고, 친구도 나도 너무 좋아 완전 좋아.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김준현 아저씨께 다른 집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요청드렸다.               



 두 번째 집 역시 오피스텔이었다. 이번 집은 지하철역과는 더 멀어졌지만, 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환승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서 이 집 역시 직접 보기도 전에 탈락이다 싶었는데, 건물 외관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친구도 나도 뭔가에 홀린 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오피스텔 맞아?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호텔 느낌이었던 넓은 로비와 프런트 데스크. 기다란 복도의 양쪽 벽에는 현대미술 작품들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심지어 건물 중간층에는 세입자들을 위한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당연히 집 내부 컨디션도 최상급이었다.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하지만, 비쌌다. 친구 오백 나 오백. 이렇게 둘이 합쳐서 보증금 천만 원짜리를 어찌어찌해서 들어갈 수는 있었겠지만, 그러면 월세 부담이 터무니없이 높아졌다. 다 큰 성인 여자 둘이 왜 굳이 붙어살려고 했을까.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그 집을 우리가 덜컥 계약 해 버리면, 혼자서 오피스텔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월세와 공과금을 반반씩 부담한다고 해도 각각 최소 오십만 원씩은 매달 안정적으로 내야 되는 곳이었다. 당연히 아웃이었다. 아쉬움은 많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에는 욕심을 빨리 버려야 내 속이라도 금방 편해진다는 게 내 오래된 생각이었다.       


        

이 와중에 눈썰미가 남달랐던 김준현 아저씨는 첫 번째 집과 두 번째 집을 보고 난 다음에는, 나와 내 친구의 주머니 사정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조건들을 정확하게 캐치하신 듯했다. 이런 게 연륜인가 싶을 정도로. 왜냐하면, 아저씨가 세 번째로 보여준 집부터는 그런대로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집은 역과도 가깝고 신축 빌라여서 거의 첫 입주나 다름없는 집이었다. 월세 부담도 적었다. 친구와 내가 반반씩 내면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다 생각했던 범위에 딱 들어와 있었고, 출입문 보안과 CCTV 설치도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변수는 생각지 못했던 곳에 있었다. 세 번째 집이 있던 곳이 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재정비 구역이었던 것이다. 친구는 이 집을 정말 마음에 들어했었는데, 소음에 예민한 나는 구길 수 있는 인상을 최대한 구겨가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집을 보러 갔을 때만 해도 바로 앞에 있던 빌라가 재건축 중이었는데, 나중에는 그쪽에 16층짜리 오피스텔이 떡하니 들어왔으니. 그 소음과 먼지를 상상해 보면 인상을 최대한 구기길 잘했다 싶다.          



그러다 마지막, 우리가 결국 계약을 하게 된 하나가드리움 오피스텔. 이 건물 2층에는 김준현 아저씨의 사무실이 있었는데, 건물이 누리끼리한 데다가 옆에는 또 멀끔한 아파트가 우뚝 세워져 있어서 더 대비되고 낡아 보였다. 아마 우리끼리 발품 팔면서 직접 돌아다니다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하다. 김준현 아저씨가 정말 확신 가득한 눈빛으로 여긴 아가씨들이 보면 그냥 바로 계약할 것 같다고 하는 바람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살펴보러 갔다. 그런데 아니 이게 뭐야? 친구도 나도 너무 좋아 완전 좋아.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집이었다.              


 

사실 요즘 대부분의 오피스텔들은 한쪽 벽이 붙박이장으로 꽉꽉 채워져 있어서 실평수는 5평처럼 느껴지는 7평짜리 오피스텔들이 많은 편인데, 이 집은 집주인이 미니멀리즘에 많은 영향을 받으셨는지. 리모델링할 때, 필요한 것들만 딱 간결하게 옵션으로 유지하면서 새 것으로 바꿔 놓으셨다고 했다. 실제로 살아보니까, 친구 침대 내 침대를 각각 하나씩 놓고도 공간이 남아서 헹거와 테이블을 놓았다. 그런데도 널널했으니까 둘이 사는데 정말 딱 좋았다. 월세와 공과금도 감당할 수 있는 선이었고. 편리한 주차시설과 지하철까지 도보 5분 이내의 거리, 아파트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분리수거하는 곳. 밤늦게 다녀도 집까지의 거리가 밝았고, 24시간 건물에 상주하고 계셨던 경비 아저씨 덕분에 마음 놓고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집이었다. 정말 좋은 집이었다. 서울에서 살았던 내 집 중에서 가장 베스트였을 정도로.            


        


 그렇게 2년을 살았다.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 나는 1년만 살고 말 줄 알았는데.         



      

월세에 대한 고민만 없었더라면, 좀 더 오래 살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던 집이었다. 편했고 여자 둘이 살기에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었던 집이었다. 아 물론, 집 주변이 죄다 회사 건물이라 인간미가 좀 부족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제 와서 문득 드는 생각이긴 하지만, 집과도 인연이란 게 어렴풋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하나가드리움 오피스텔에 살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투룸을 놓친 덕분에 김준현 아저씨를 만났고, 때마침 하나가드리움에 공실이 있어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었던 거였을 테니까.           



앞으로는 어떤 집에 살게 되려나. 좋은 인연만 계속됐으면 좋겠다.                    

이전 10화 그 해 여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