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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Oct 26. 2019

그 해 여름

서울 남성역 벽돌집



 그해 여름은 참 고약했다.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뒷목까지 줄줄줄 흘러내렸고 햇볕은 뜨겁다 못해 몹시 따가웠다. 피부를 보호하지 않으면 살갗이 하얗게 벗겨지기 쉬운 그런 날들의 연속. 여름 더위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계절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지구가 정말 아픈 건 아닌지 심각하게 걱정이 될 정도로. 그래서 난 확신했다. 이건 말로만 듣던 이상기후라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이상한 여름은 폭염이라는 이름으로 매일매일 최고 기온을 갱신했다.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일이 가장 어렵고 힘든 거라고 다들 그러던데. 그해 여름에게는 그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어찌나 무덥던지. 도시를 꽉꽉 채우고 있는 아스팔트, 자동차, 네온사인, 가로등. 하늘 높이 치솟아있는 높은 건물들과 그 건물 여기저기에서 삐죽삐죽 튀어나와있는 에어컨 실외기까지. 그런 것들마저 도 그해 여름 더위에 잔뜩 화가 난 것처럼 짜증스러운 열기를 미친 듯이 내뿜고 있었다. 덕분에 도시의 온도는 더-더-더- 상승했고, 그때 나는 남성역 근처 다세대 주택에서 그 더위와 씨름하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맞을 대로 맞은듯한 빛바랜 벽돌집, 치렁치렁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는 전깃줄, 도보 1-2분 거리에 있었던 시장 덕분에 여기가 서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겨웠던 곳. 남성역 벽돌집. 그 집은 회사에서 구해준 숙소였는데, 나처럼 서울에 본가가 없는 직원들을 위해 회사가 마련해준 작은 배려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 숙소지. 똑같은 크기의 작은 방이 두 개, 냉장고 놓을 자리도 애매했던 부엌 겸 거실, 변기통 만으로도 꽉 찼던 화장실과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좁고 길기만 했던 베란다가 있던 집. 보증금 1000에 월세 60짜리. 세탁기도 냉장고도 에어컨도 없었던 곳. 노옵션. 그냥 딱 둘이서 살면 어찌어찌 살만한 평범한 가정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당연히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집은 아니었다. 서울에 처음으로 올라와 살게 될 내 집이 그런 모습일 거라고 상상 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 집에서 나는 넷이 함께 살았다. 공간은 당연히 협소하게 느껴졌고, 고등학교 기숙사 때처럼 엄격한 규칙을 정해놓고 살진 않았지만 서로가 각자의 개별성은 존중해 주면서도 함께 지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래도 뭐, 이런 것들은 다 괜찮고 좋았다. 우리가 감정선이 쉴 새 없이 날뛰는 요란한 사춘기를 겪는 나이도 아니었고, 대부분의 일들은 대화로 다 해결이 가능했기 때문에 큰소리 내며 치고받고 싸울 일도 딱히 없었다.




 문제는 역시 그 놈이었다. 그 해 여름. 고약하고 또 고약했던 그놈.




 처음에 이사를 올 때 집이 텅텅 비어 있긴 했지만, 회사에서 세탁기와 냉장고, 가스레인지 정도는 구매를 해줘서 그런대로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우리가 에어컨의 필요성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정말 큰 실수였다. 이사 온 그 해 여름은 당연히 선풍기만으로 버티기 힘든 날씨였고, 우리처럼 미리 인지를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때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선풍기며 냉풍기며 에어컨이며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품절과 지연의 연속이었다. 중고거래마저도 난리였다. 뒤늦게 필요성을 인지하고 구매하고자 했을 때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을 때였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 가격도 무시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냉풍기라도 구해본다며 버텨보라고 했다.



 그 말이 참 매정하게 들렸다. 하지만 딱히 우리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그해 여름을 버텨야만 했다. 대나무로 만든 대자리를 사기도 하고, 아이스 쿨매트며, 마약 쿨 이불이라는 인견이불이며. 우리들은 생존을 위한 자잘한 소비를 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그 날따라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윙윙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마저 답답하게 느껴져서 약간 짜증스러운 밤이었는데 덕분에 아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자다가 너무 더워서 숨을 못 쉬면 어떡하지. 선풍기도 열 받아서 같이 뜨거워지면 불이 나려나 싶으면서, 가만히 누워있는 내가 꼭 뜨거운 샤부샤부탕에 빠져있는 주꾸미 같다고 느껴졌다. 걔네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동안 걔네들의 마음은 몰라준 채 내 배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탓에 벌을 받게 된 것만 같았다. 한 번쯤이라도 나를 위해 심청이처럼 뜨거운 물에 빠져준 주꾸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어야 했는데. 



 또 어떤 날에는 잠을 자는데 너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깼다 잠들다 깼다 잠들다를 반복하다가, 잠결에 냉장고 문을 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마음으로는 냉장고 안에 들어가 시원하게 잠을 자고 싶었던 것 같은데, 우리 집 냉장고는 다 큰 성인 여자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큼지막한 냉장고가 아니었다. 그래서 난 내 몸을 냉장고 안에 꾸겨넣는 것 대신에, 그 안에 들어있던 물통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물통이 죽부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소중하게 껴안았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물통을 껴안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함께 살았던 동료 룸메들이 박장대소했지만, 나는 능청스럽게 더위를 쫓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물통 껴안기를 권하기까지 했다. 더위가 사람을 이렇게 까지 만들 수 있구나.



 그렇게 여름이 끝나갈 무렵. 차장님께서 어렵게 직구로 구했다는 냉풍기 두 대가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지금은 실외기 없는 에어컨이라고 해서 에어컨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복잡한 설치나 출장비 없이도 쓸 수 있는 에어컨들이 시중에 많이 출시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게 흔하지 않아서 직구를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 냉풍기가 하도 오래된 것이었는지 생김새는 꼭 옛날 60년대 텔레비전 같았고, 소리는 대차고 우렁차서 저걸 듣고 잠을 잘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인간은 확실히 적응의 동물임이 분명하다. 구식 같아 보여서 의심스러웠는데 성능은 확실했다. 다행이었다.




  유별났던 날씨, 유별났던 행동.




 나는 가끔씩, 봄이 끝나는 순간. 그러니까 여름이 다가오기 전.  앞으로 다가올 여름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이번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이번 여름에도 혹시 또 주꾸미가 되야하는 건 아닐까. 

또 물통 껴안고 자야 되는거 아니야?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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