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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Oct 31. 2019

여유로운 마음 두 뼘

북한산 그늘 아랫집



     

  주변 사람들이 항상 그랬다. 대출도 사용하기 나름이라고.         




 

 처음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학생 때 학과 성적 장학금을 놓쳐서 난생처음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내 이름 앞으로 덜컥 생겨버린 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정말 한없이 크게만 느껴졌고, 느리지만 야금야금 쌓여가는 이자들은 바라볼 때마다 은근 스트레스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누군가는 나에게 요즘 학자금 대출 안 갖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주기도 했지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나에게 대출은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빚.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백만 원도 큰돈이라고 생각해서 현찰로 들고 다니면 불안해서 벌벌 떨던 나였는데, 천만 원의 빚은 나를 최소한 열 배만큼은 더 불안하게 했다. 덕분에 나는, 대출은 이미 충분하니까 앞으로 또 다른 대출을 만들진 말아야지. 대출은 나쁜 거야.라고 생각을 굳혔다.      


   

 사회생활 3년 차가 되어갈 무렵에도 난 여전히 대출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한 번은 대학생 때 대외활동을 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언니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언니가 그 집을 대출로 산 집이라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월세 부담이 싫어서 전세대출을 받았다는데. 고시텔보다는 좀 더 넓긴 했지만 빨래라도 돌려서 건조대를 펼치면, 집 안이 꽉 차서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이런 집에 살기 위해 내 학자금 대출보다도 더 많은 돈을 대출받았다고?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됐다. 아무리 잠만 잔다고 해도 그렇지. 굳이 왜?....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랬던 내가 대출을 받았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아서 새로운 대출을 받아도 괜찮겠지 싶었던 건 아니었다. 여전히 학자금 대출은 내 앞에 남아있고 지금도 열심히 이자를 내고 있는 중인데, 계기는 우리 팀 팀장님의 넋두리 같았던 말 때문이었다. 우리나라가 미쳤나 봐요. 청년한테만 다 퍼주네. 나 같은 1인 가구 독신을 위한 정책은 없어. 나도 청년 하고 싶어요.          



솔직히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오늘은 본인이 청년이 될 수가 없어서 속상한 날 이신가 보구나. 하고 그냥 대충 흘려들었다. 그런데 내가 또 호기심이 한 번 생기면 그걸 꼭 해결해야 되는 성격이라서, 우리나라가 청년한테 퍼주는 게 뭐가 있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게 되었다.  


     

 초록창에 청년정책을 검색해 봤다.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실시하는 청년정책도 있었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실시하는 정책도 있었다. 종류도 생각보다 다양했다. 학자금 이자 지원, 청년 임대 주택사업, 청년 고용정책 등 몰라서 그렇지 알아두면 유용할 정보들이 꽤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 대출과 관련된 정보를 유심히 살펴봤다. 내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기도 했고, 그 무렵에 이제는 누구랑 말고 나 혼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2년간 월세로 지출한 금액을 계산해보니, 그 숫자가 칠백이십이었는데. 여기에 오피스텔 관리비까지 포함하니까 거의 천만 원에 가까웠다. 그 돈이 지출이 아닌, 내가 모은 돈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동안 관리비와 월세로 지출한 돈이 갑자기 너무 아깝게 느껴지면서 돈을 모으고 싶은 욕구가 심하게 꿈틀거렸고, 전세대출을 받았을 때 내가 앞으로 저축할 수 있는 금액에 대해 따져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당연히 전세 대출을 받는 것이 이득이었다. 물론 어떤 집을 구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순 있겠지만, 내 상황에서는 한 달에 35만 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때 그 언니가 정말 현명했던 거였다. 손바닥만 한 집에 살더라도 월세보다 전세가 더 이득이었던 거고, 언니는 그걸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대출도 영리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나의 전세살이.          




아직도 여전히, 대출은 결국엔 빚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만큼 대출이 심각한 짐 덩어리처럼 느껴진다거나 내가 많이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덕분에 더 많은 저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부모님 환갑을 챙겨드리고, 가족이 어려움에 처하면 경제적인 도움을 건넬 수도 있게 되었고. 열심히 일한 나에게 가끔씩 잘하고 있다 격려해 줄 수도 있고, 배우고 싶었던 운동이나 글쓰기 같은 것 들을 월세살이로 지낼 때보다는 덜 스트레스받고 덜 초조한 마음으로 기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여유로운 마음이 두 뼘 정도 늘어나게 된 것. 

이 것이 전세살이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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