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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Nov 04. 2019

그런 의미

북한산 그늘 아랫집


 혼자 산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인 것 같다. 관리비, 공과금, 집주인과의 관계, 대출이자. 신경 쓰고 책임지며 살펴봐야 될 일들이 점점 늘어나는 건 분명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예전엔 몰랐던 내 모습들을 하나둘씩 발견하고, 새로운 취향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보인다고.



 내가 발견한 몰랐던 내 모습은 내가 생각보다 깔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동안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집이 좀 어지럽고 부산스럽게 느껴져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혼자서 치우는 게 힘들기도 했고, 내가 좀 덜 민감하게 받아들이면 그렇게 많이 어지럽거나 부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혼자 살아보니 달랐다. 나는 설거지도 그때그때 바로 하는 게 좋은 사람이었고,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가 바싹 마르면 바로 개어서 정돈하는 게 좋은 사람이었다. 침대 위 이불도 자고 일어나면 비몽사몽이라 완벽하게 정돈 해 놓지는 못해도, 최소한 반듯하게 펼쳐는 놓아야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기분이 좋았다. 이불도 치렁치렁 마른빨래도 치렁치렁 여기저기 부산스럽게 걸려있으면, 나는 꼭 우리 집이 유령의 집 같아서 심란 해 지곤 했다.



 가지런히 각 잡아서 정리하는 것도 생각보다 잘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집 옷방에 들어가면 한쪽 벽이 헹거로 나란히 채워져 있는데, 거기에 걸려있는 옷들은 비슷한 컬러별로 한쪽 방향을 바라보며 정돈되어있다. 냉장고도 식재료나 음식들이 칸마다 가지런히 분류되어 나눠져 있는데, 반찬은 첫째 칸, 된장 쌈장 고추장은 둘째 칸, 김치는 셋째 칸. 대게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먹을 만큼만 사다 먹고 나중에 먹을 것 같은 기분에 괜히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두지 않는 것이다. 쌓아두는 게 있다면 요즘 즐겨먹는 아몬드 브리즈나, 사자마자 모두 다 칼로 썰어서 냉동실에 소분해 놓는 대파 정도? 신발장도 예외는 없다. 자주 신는 신발만 현관에 내놓고 나머지 신발들은 같은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돈 해 놓는다. 건전지는 건전지끼리, 청소용품은 청소용품끼리. 각을 잡지 못하면 쓰임이 비슷한 애들끼리 정해진 위치에 넣어둔다. 그러면 나중에 필요할 때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데, 그러면 같은 물건을 또 사고 또 사는 미련한 짓은 안 할 수 있게 된다. 나도 나의 이런 알뜰함에 처음엔 많이 놀랬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집을 통해 나는 미숙한 모습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요리할 때 그랬다. 나는 원래 그릇을 좀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배가 고프면 이성을 잃는 건지. 싱크대가 폭발할 정도로 어지렆히며 요상하고 부산스럽게 요리를 한다. 평점심이 항상 배고픔을 뛰어넘지 못한다. 좀 더 차분해지면 좋으련만, 쉽지 않다. 식물도 사는 족족 죽인다. 왜 내 손끝만 닿으면 식물들이 시들시들 해 지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 이제는 선뜻 식물을 사기가 두려울 정도다.




 그래도 나 혼자만의 공간. 우리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 집이 생겨서 가장 좋은 점은, 내 마음대로 내 집을 꾸밀 수 있다는 사실인 것 같다. 집이 너무 좁을 때는 꾸밀 공간 조차 없어서 염두도 못 내본 일이었고, 공간이 좀 여유가 있다 싶었을 때에는 같이 사는 친구와 의견이 달라서 집을 꾸밀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집도 완전히 내 소유는 아니라서 꾸미는데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온전히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우리집의 모든 부분 부분들이 다 너무 예쁘고 취향 저격이다. 그래서 난 새로운 가구나 새로운 가전제품 하나를 고를 때에도 섣부르게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집에 어울리는 디자인인지. 내가 편안함을 느낄만한 요소가 담겨 있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이렇게 신중하게 고르면 그 물건이 우리집에 왔을 때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러면 난 또 예뻐진 우리집을 보며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을 느낀다. 아 역시 나의 안목 아직 죽지 않아쓰~ 라며. 선순환 구조인 것이다.



 덕분에 집에 머무는 시간 역시 정말 행복하다. 이케아에서 산 스탠드를 켜 놓고 그 불빛 아래서 조용히 책을 읽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게 틀어 놓고 감상하는 것. 침대에 축 늘어져 멍 때리는 것. 아로마 향초를 켜 놓고 따듯한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것. 빈 책장을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 채워 나가는 것. 그릇 세정제, 바디워시, 섬유유연제, 방향제. 이런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향으로만 고르는 것. 좋아하는 친구들을 초대 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우리집이라고 부르는 이 공간에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집순이가 되어가는 길이라면, 나는 이미 집순이다. 우리집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차 있고,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난 내 집에 들어오면, 무겁고 어두웠던 감정들과 뾰족하게 날 서 있던 모난 마음들을 내려놓는다. 상처 입은 겉 껍데기도 아무렇지 않게 벗어 놓고, 집이 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만을 흡수한다. 오늘도 잘했다 격려한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도시에서의 생활, 혼자 사는 삶은 쉽지 않다. 내가 항상 꿈꿔왔던 서울에서의 삶과 혼자 사는 삶은 세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점점 더 어렵고 모르겠고 쉽지가 않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까지 이 곳에 남아 혼자 살 수 있는 까닭은,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우리집이 그나마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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