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a솨 Nov 07. 2019

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퇴근길 지하철. 운 좋게 자리에 앉아 집까지 갈 수 있었던 날. 

우연히 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를 듣게 된 날이었습니다.

일부로 집중해서 들으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왜 그런 날이 있잖아요? 만원 지하철에서 착석하게 되면 정말 좋은데, 가방에는 읽을만한 책도 없고 휴대폰 배터리도 1%에서 간당간당한 날. 그 날이 제게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딱히 할 게 없어서 눈을 감았는데, 불편해서 잠도 안 오고. 그러다 보니 옆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엿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 정 과장 이야기 들었어? 그때 집 대출받아서 샀잖아. 근데 벌써 3억이나 올라서 이익 좀 봤다고 하더라고. 자기도 얼른 집사 왜 안 사!?

- 아 저는 아직 어디로 갈지 지역을 못 정했어서...

- 집도 돈이야. 돈이 돈을 불러오는 곳으로 가면 돼. 왜 좋은데 많잖아 요즘! 철도 지나간다던 거기나 아니면 그 왜 자기 지금 사는 곳 옆동네도 호재라며. 우리 같은 월급쟁이는 큰돈 만지기 어렵다 자기야? 



가만히 그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엿듣고 있다 보니, 좀 신기했습니다. 

집도 돈이었구나. 



그들은 저와는 좀 다른 목적으로 이사를 가고 집을 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집이 이사를 했던 목적은 대부분 아버지의 입사와 퇴사 혹은 나의 입학, 개강, 종강, 이직 등과 같은 일과 관련이 있었거든요. 이사와 집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집에 대한 이야기가 쓰고 싶어 졌습니다. 이 책에서 내가 살았던 모든 집들을 다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거든요.



나의 집들은 크고 화려하진 않았습니다.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는 사전적으로 순수한 주거의 의미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 다른 추억과 의미로 제 마음속에 깊숙이 남아있어요. 



도색 없이 잿빛 그대로였던 양지골 시멘트 집도, 집 구조가 찌그러진 육각형이었던 충북 외딴집도. 모두 모두 하나같이 물질적인 가치로는 영 꽝이었을지는 몰라도. 울타리가 되어줬다는 것. 그 속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가족 같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나쁘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



이 것들 만으로도 나는 내가 살았던 우리 집들이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게 될 나의 집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나하나 소중히 곱씹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깃들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

나는 당신도 당신이 살았던 '집'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라요.

당신이 전에 살았던, 현재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게 될 집들을 어떤 추억과 의미로 기억할 것인지

회상하고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아마 당신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더불어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상황과, 사람과, 시선들을 덤으로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 2019년 11월 7일

수아 씀.



이전 14화 그런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