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미니멀리스트

#오토매틱 시계 #김영하 작가 #인스타 광고

by 밍크

시작은 김영하 작가였다. 팬심으로 작가가 출연한 유튜브를 검색하다 한 영상을 보게 됐다. 오토매틱 시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소설가답게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 시간을 느리게도, 빠르게도 느낀다는 것, 어떤 기억은 오래 남고 어떤 것은 기억조차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 순간에 대해 말했다.

또 대량생산한 시계가 아니라 정교하고 미적 완벽을 추구하는 아날로그시계를 누군가 여전히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 나도 오토매틱 시계를 사야겠다. 아날로그시계의 초침과 로터(Roter)를 보고 있으면 명상하는 기분이 든다고 하잖아’


3만 원 대 카시오 전자시계부터 티쏘의 30만 원 대 시계까지(그 외에도 까르벵, 다니엘 웰링턴, dkny, 캘빈클라인, 로즈몽, 마크제이콥스 등) 10여 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는데 갤럭시 스마트워치를 사게 되면서 일반 시계를 잘 안 차게 됐고 애플워치를 사면서 내가 구입한 마지막 시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동영상이 아날로그시계 구매욕에 불을 지폈다.

여태까지 시계를 사는데 한 200만 원은 쓴 것 같은데, 이럴 거면 비싸고 좋은 시계 한 개를 살 수도 있었는데 어리석었다고 후회하다가 ‘오토매틱 여성시계’라는 키워드로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100만 원대에서 2천만 원대까지 있었다. 손석희 앵커 같은 유명한 사람도 3만 원짜리 카시오 시계를 찬다는데 내가 100만 원이 넘는 시계를 사도 될까? 고민하다가 ‘손석희 앵커 같은 대단한 사람은 3만 원짜리 시계를 차도 만족하지만 나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말로 비싼 시계를 갖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닌가?‘라고 합리화를 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손가락만 움직이면 택배가 선물처럼 도착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제품을 직접 입고 코디하는 것보다 편하다. 심지어 이것만 갖게 되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건을 검색하다 보면 귀신같이 인스타에 관련 제품 광고까지 나오는데 똑똑한 마케팅 놈들을 내가 어떻게 이기냔 말이다. 자학과 합리화를 거듭하다가 지금의 나에겐 로마 인덱스 위치마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그린 다이얼의 ‘티쏘 르로끌 오토매틱 레이디’ 이 제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격은 백이십이만 원, 비싸지만 못 살 정도 아니다.

올해는 옷은 그만 사고 이 시계를 사는 것으로 마지막 소비를 하자. 최저가로 사려다 보니 지마켓에서 스마일카드를 만들면 7만 원 더 싸게 살 수 있다. 백이십만 원짜리 시계를 사면서도 7만 원 할인을 받고자 카드발급 신청을 이미 하고 있는 나(합리적인가? 아닌가?), 결제를 누르는데 카드 수령 등록이 안 됐다고 계속 실패한다. 문자로 온 수령등록 바로가기 url을 클릭하니 카드번호와 cvc를 입력하라는데 카드번호는 현대카드앱에서 조회가 가능한데 cvc 번호는 알 도리가 없다. 현대카드앱 챗봇에게 물어봐도 카드를 받기 전까지는 cvc번호를 알 수가 없단다.


카드수령 전에도 물건을 살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상하다. 계속 구매를 시도해도 실패... 속 시원하게 상담원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ARS에서 시키는 대로 누르다 보니 다시 ‘보이는 ARS’로 나를 보내버린다. 어찌어찌 간신히 상담원과 통화가 연결되어 물어보니 100만 원이 초과하는 금액은 카드수령 후 결제가 가능하단다. 그렇게 중요한 사실은 대문짝만 하게 적어놓아야 하는 거 아닌가? 카드야 빨리 와라 그리고 그전까지 할인이 끝나지 않길...


[추천 책] 사는 마음, 이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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