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별 Jul 13. 2024

2-1 내 몸에서 뾰족한 형태의 무언가를 발견한 날

내가 주인공이라고 착각할까 걱정이라도 됐는지 시리도록 맑고 파랐던 하늘

내 몸에서 뾰족한 형태의 무언가를 발견한 그날은, 맑고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 사이로 비치는 강렬한 햇볕에 눈이 시린 여름의 절정, 8월 중순이었다. 1분만 밖에 나가도 온몸이 달궈지고 콧잔등에 땀이 맺히는 그 여름날, 나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이 걸리는 병원을 향해 제법 기분 좋게 밖에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내가 이직한 후 처음 얻는 휴가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오전엔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지만, 아무튼 휴가는 휴가니 여느 때와 같이 얼른 마치고 예쁜 카페에 들러 휴일을 만끽할 계획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연분홍색 검진복으로 갈아입고 유방초음파 검사 대기실 앞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언제 내 이름이 불릴지 몰라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지도 못하고, 대신 오후에 갈 예쁜 카페를 찾아보고 살갗에 닿는 빳빳하고 두꺼운 면의 감촉을 느껴보기도 하며 무료한 대기 시간을 흘려보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더운 몸을 식히며 다음에는 꼭 택시를 타고 오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어느덧 순서가 되어 어두컴컴한 검진실에 들어가 가운을 벗고, 냉기가 도는 진찰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안내에 따라 양쪽 팔을 귀 옆으로 올리자 따뜻한 살결 위에 차가운 젤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둔탁한 검사기기가 그 젤을 밀고 피부 표면을 누르며 몸 안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나는 간지럼을 잘 타는 편이라는 것이었다. 서른이 다 되어가던 그때에도 나는 발바닥과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면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초음파 검사와 같은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적 깔린 검사실에서 혼자 웃음을 참다 결국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나는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마스크를 챙겨 왔다. 적어도 웃음을 참는 입 모양만큼은 가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스크의 도움으로 웃음을 숨기며 눈을 감고 검사가 끝나기 만을 기다리던 나는, 어느 순간 정적 속의 적막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초음파기기가 계속 한 곳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있지 않던가? 그제야 눈을 뜨니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몸을 앞으로 기울여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모니터의 빛을 받아 밝게 비치는 두 의료진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상했다. 건강검진을 여섯 번을 받았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그 순간 검진실의 무거운 공기가 내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인의 발에 밟히기 직전이 이런 느낌일까. 질식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심장이 쿵쿵 뛰고, 숨을 쉬기 어려워 얕은 숨을 가쁘게 내쉬기 시작했다. 간지러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잘 몰라도 이것만은 분명했다.

내 가슴에 뭔가 있다.


적막하고 어두운 검진실에는 조용한 숨소리 그리고 기계음 만이 들려왔다. 초음파기기가 같은 부위 주변을 다각도로 관찰하며 이따금 뭔가를 저장하는 듯 삑삑 거리는 신호음이 이어졌다. 한참을 검진하던 의사가 모니터의 한 곳을 레이저로 가리키며 입을 뗐다.

"환자분 검사결과 종양이 있어요. 크기는 작은 편인데, 모양이 안 좋아요. 양성종양은 보통 매끄럽고 둥근 편인데, 지금 모니터로 보다시피 모양이 좀 안 좋은 편이에요. 초음파는 정확하지 않으니까 빨리 조직검사를 받아보세요."




가볍게 온 건강검진 첫 검사에서 흡사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은 여느 때보다 쿵쿵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후 나는 정해진 순서대로 이끌려 몇 시간에 걸쳐 나머지 검사를 마쳤지만, 그렇게 신나게 찾아놓은 카페에는 결국 가지 않았다. 수면내시경을 마치고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병원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꾸역꾸역 먹고,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겐 걸을 힘조차 없었다.


택시에 주저앉아 집으로 향하는 그 순간에도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햇볕은 뜨거웠다. 영화나 소설에서 하늘은 종종 주인공의 기분과 상황을 암시하는 수단으로 쓰이던데, 현실의 하늘은 그렇지 않았다. 내 기분은 불안하고 초조해서, 날씨로 형상화하려면 구름 잔뜩 낀 하늘에서 비가 퍼붓고 천둥번개가 수십 번은 쳐야 했다. 그런데 현실의 하늘은 오히려 정 반대였다. 하늘이 내가 주인공이라고 착각할까 걱정이라도 됐는지, 그날 하늘은 참 시리도록 파랗고 선명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