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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별 Jun 24. 2024

나에 대한 사랑은
조건부 융자와 같았다

내 기준에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기에 괜찮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나

나는 나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내 기준에 나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모님한테 맛있는 음식을 사드릴 수 있는 나를 좋아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부터 약 1년 반의 취업 준비 기간 끝에 집 근처의 안정적인 직장 한 곳에 합격했다. 머리를 정돈하고 정장을 입고 나갔다 돌아와서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책상에 앉던 나를 묵묵히 응원해 왔던 부모님은, 내 합격 소식에 안도감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들어보는 한숨 소리를 따라 나도 한숨을 후 내뱉었다. 그 한숨으로 내면에 깊게 파묻었던 불안을 약간이나마 날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운 좋게도 승진을 빨리 해서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적잖은 돈을 벌었다. 가진 건 내 몸 하나밖에 없어서 나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는 걸 숙명으로 여겼던 나는, 이 정도면 나를 부양하는 건 물론이고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도 사드리고 함께 여행까지 갈 수 있을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꾸준히 자기계발하는 나를 좋아했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시도했다.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요가 학원에 가서 몸을 한껏 구겨보기도 하고, 필라테스 학원에 가서 상체를 뒤로 비스듬히 기울이고 다리를 들어 올려 몸을 브이(V) 자로 만들며 꾸준히 운동했다. 쉬는 날에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문화생활에 할애하는 모든 시간은 당시의 내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카페에 2시간을 앉아 책을 읽을 수는 있어도, 영화관에 2시간을 앉아 영화 한 편을 보는 건 그렇게도 힘이 들었다. 돈과 체력 보다도 시간의 문제였다. 나는 내게 여가라는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워야 했다. 24시간 비상상태를 유지하던 내 몸은 온몸에 켜진 비상경고등으로 몸 전체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제법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그따위 경고등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적당히 예뻐 보이는 나를 좋아했다.

양심상 객관적으로 예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공들여 화장을 하고 머리를 세팅하고 난 내 모습은 주관적으로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대학교에서는 쌍꺼풀을 만들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쌍꺼풀테이프를 붙이고 공부하다 한 눈에만 쌍꺼풀이 생겼지만, 짝눈 연예인을 검색해 보며 나름 그 눈마저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기뻐했다. 그 와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빠지지 않는 볼살과 뱃살은 마음에 안 들었는데, "뭐가 살쪄!"라고 일갈하는 주변 사람들을 뒤로하고 자두 다섯 알로 저녁을 때우며 살을 빼기도 했다. 정확히는 근육을 빼고 기초대사량을 줄이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겉으로 보기 좋아 보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나의 쓸모를 판단하기 위한 나만의 척도를 만들었고, 그 측정값을 끌어올리려고 발버둥 쳤다. 그 노력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모든 게 완벽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나 정도면 제법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한 사랑은 조건부 융자 같은 것이었다. 나는 융자 조건에 맞춰 내 측정값을 끌어올리며, 돈 빌리듯 사랑을 빌려왔다. 제법 풍족해진 사랑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기도 했다. 다만 그때는 몰랐다. 꾸어온 사랑은 이자를 붙여 상환해야 한다는 걸.


원리금 상환일이 다가왔다. 이 악덕 대부업체는 불쑥 일시상환을 요구했다. 평생 기한 없이 내어줄 것처럼 굴더니, 이제껏 빌려줬던 원금을 일순간에 상환하라고 했다. 이런 악덕 업체가 어디 있지?

아, 그 업체가 나라고?

그런데, 내가 암이라고?

아니, 나 스물아홉 살인데?




평생을 빌려 쌓아 올린 자기애는 암 진단이라는 폭우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엔 흙과 모래가 뒤섞여 탁한 물 웅덩이가 크고 깊게 고였다. 나는 그 속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댔다.


나는 더 이상 부모님한테 맛있는 음식을 사드릴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기는커녕, 치료 중엔 부모님이 맛있는 음식을 해주셔도 먹지를 못했다. 평소에 거뜬히 먹던 햄버거 하나의 반의 반도 먹지 못하고 남겼다.

나는 더 이상 자기 계발을 할 수 없었다. 항암치료 후 2주가량 지속되는 구역질로,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간신히 누워만 있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데 집착했던 나는 효율과 아주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다.

나는 적당히 예뻐 보이지 않았다. 봐줄 만한 외모는 머리카락과 함께 사라졌다. 약 부작용으로 얼굴은 퉁퉁 부었고, 몸은 아무리 먹어도 말라만 갔다. 내 쓸모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기준에 나는 이제 괜찮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물 웅덩이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꺼내준 건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이었다. 내게 끊임없이 손을 뻗어준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간신히 빠져나온 나는 그 위에 떠 있는 선명한 무지개를 보았다.

곁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 어느덧 커다란 호수가 된 그곳에 다시 뛰어들어보기로 했다. 그 안에서 나는 깊이 묻어두었던 나의 오랜 감정을 마주하기로 했다.

이제 나의 쓸모를 증명하며 얻었던 조건부 사랑을 끝내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무조건부 사랑을 해보려 한다. 나의 의미는 나의 쓸모가 아닌 나의 존재에 있다고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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