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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별 Jun 17. 2024

완벽한 육각형 인간과
불완전한 별사탕 인간

우리의 인생은 제멋대로 뾰족하지만 달콤한 맛에 매혹되는 별사탕과 같아서

완벽을 추구하는 요즘 사람들은 외모, 학력, 직업 등 모든 조건에서 완벽한 인간을 '육각형 인간'으로 명명하고 선망한다. 그래서 그 조건에 자기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타인과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내가 좀 더 우위에 있으면 안도하며, 열위에 있으면 불안해하거나 분노한다.


타인과의 비교는 분명 20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중요한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다. 무리를 이뤄 동물과 맞서고 사냥하며 살아가는 수렵채집사회에서의 기준 미달은 곧 도태이자 죽음과 직결되었으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10여 년 전을 떠올려본다면, 우리에게는 공통의 비교대상인 소위 '엄친아(엄마친구아들)'와 '엄친딸(엄마친구딸)'이 존재했다. 다만 지금은 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그 범위가 '엄마 친구'에서 '우리나라' 그리고 저 멀리 '세계(특히 선진국)'로 확대되었을 뿐이다.


수렵채집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200만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삶의 방식은 극적으로 변화해 왔으나,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 본능, 그리고 이를 위한 비교 의식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근 10여 년간 확장된 비교대상으로 우리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비교의식을 철저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육각형인간'을 이루는 일부 조건들은 여전히 우리의 생존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비교의식이 생존에 도움을 준 건 분명하니까.




다만 그로 인해 평생 멀리 있는 조건 만을 욕망하며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을 등한시하는 원시(遠視) 상태로 살아가다 이 생을 마무리하기에는, 한 번뿐인 이 삶이 너무도 아깝지 않을까. 이렇게 힘든데 뭐가 아깝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 또한 육각형 인간의 조건에 부합되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으니까. 그 과정이 너무도 힘들어서 내겐 평생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 익숙했다.


그러다 만 29살의 나이에 암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 삶이 때로 별나고 별거 없어 보여도, 제법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잃어보고 나서야 안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고, 또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처럼 건강까지 잃어보고 나서야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건을 위한 노력은 어떤 면에서는 젊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다만 생존을 위해 조건만을 향해 내달리다가, 그 발걸음이 도리어 내 생존에 위협이 된다면 잠시 멈추고 수정체를 조절해 잠시 나를 볼 시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난생처음 다육이를 기르고, 난생처음 나를 기르기 위한 발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기르기 위해 불완전한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기준 축에서 완벽한 인간을 '육각형 인간'이라고 한다면,

일부 기준 축에서 불완전한 인간을 '별사탕 인간'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어떤 축에서는 부족하고 어떤 축에서는 완벽해 보이는

우리의 레이더 차트(Radar Chart)를 그려보면 그 모양은 꽤나 '별'을 닮았으니까.

별에 덧붙인 '사탕'은 우리의 소중한 삶에 바치는 작은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의 인생은 제멋대로 뾰족해 보이지만 그 달콤한 맛에 매혹되는 별사탕과 같지 않은가.

비록 내 돈 주고 사 먹지 않아도 누가 건네주면 기꺼이 혀를 내어주고

그 뾰족한 모양에 입안 가득 작은 상처를 입어도 살살 녹여 먹는 게 재미있는 별사탕.




나는 어릴 적부터 보통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의 자서전을 읽을 때는 '경외심'을 느꼈으나, 보통의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나 또한 보통의 사람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나 또한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믿을 건 내 몸 하나밖에 없던 내게 믿을 구석이 되어주었다. 이제 나는 우리 보통의 인간에게 '별사탕 인간'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오랫동안 공들여 구축해 온 나만의 믿을 구석 하나를 내어주기로 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선뜻 밝히지 못했던 나의 결핍과 그로부터 나온 불안과 슬픔을, 그리고 그 모든 걸 인정함으로써 경험한 희망과 기쁨을 이곳에 고백한다. 누군가의 감정은 나보다 더 크거나 작을 것이나, 우리의 감정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내면의 불안,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고, 희망, 기쁨을 함께 누려보기를 바란다. 별사탕 인간인 우리 모두, 이 여정을 함께 하는 짧은 순간이나마 삶의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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