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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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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Nov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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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야 할 곳,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는 곳, 내가 나일수 있는 곳

병원에 수개월간 갇혀있는 장기입원 환자들에게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공통된 소망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내가 정기적으로 방문했던 하와이 출신의 한 중년여성도 처음엔 그런 환자 중의 하나로만 생각했었다. 몸이 극도로 약해져서 사실 병원 밖을 나가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였고 혼자서 걷기가 힘든 것은 물론 시력도 거의 잃어버렸지만, 그녀는 간절히 집에 돌아가길 원했다. Against Medical Advice, 의료진의 충고를 거절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뜻대로 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녀에게 집에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 고양이가 한 마리 있어요. 초록색 눈, 아주 예쁜 초록색 눈을 가진 고양이에요. 제가 가끔 후라이드 치킨을 사다주면 너무 좋아하죠. 마치 그날만 기다려온 것 처럼요. 전 여기 너무 오래있었어요. 고양이가 치킨을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벌써 수 개월째...”


하와이에서 홀로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경호원으로 일하다가 지금 50대의 아직 이른 나이에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 이 독신의 레즈비언 여성에게 그 초록색 눈의 고양이는 아마 홀로 쓸쓸하게 남겨진 그녀 자신일지도 모른다. 의료진들은 그녀가 집에 돌아가는 순간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당연히 어떻게든 설득해서 말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난 그녀에게 병원에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다만 나에게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작은 미소를 띄우는 그녀에게 몸이 좀 회복되어서 그녀가 바라는대로 고양이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의 말과 기도를 이따금씩 건넬 뿐이었다.


Home, 꼭 내가 건강하게 숨 쉴수 있는 공간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초록눈 고양이를 생각하며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 집이라는 공간은 그녀가 쓸쓸한 혼자가 아닐 수 있는 곳, 언제죽을지 모르는 환자로만 여겨지지 않는 곳, 그녀를 다시 만날 날만 기다려온 누군가가 있는 곳, 그래서 그냥 그녀 자신으로서 편안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이 몇 달, 몇 일, 몇 시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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