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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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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Dec 01. 2020

Mother

자녀에게 엄마란, 성인에게 엄마란, 위기일 때 엄마란

간혹 동료와 같은 환자를 번갈아가며 방문하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주말 당직을 서는 동안 우연히 동료의 환자 한 명을 방문했고 그리고나서 돌아온 월요일이었다. 그 환자의 상황에 대해 전달해주기 위해 동료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 **씨 말이지? 참, 솔직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병실에 잔뜩 놓인 꽃들하며, 극진히 돌봐주는 남편에, 부유한 집안배경에, 사실 뭐 부족할 게 있느냔 말이지.’ 물론 환자들 앞에서는 그 동료도 항상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하지만, 이건 사담에 가까웠으니. 나는 동료가 그동안 그 환자를 만나오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동료가 하는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정말로 그 환자의 병실은 다른 방들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화려했다. 신선한 꽃과 예쁜 액자들이 방안에 가득했고, 뇌수술을 위해 머리 한가운데를 밀었어도 환자의 손가락에 끼워진 커다란 반지나 그 밖에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에서 그녀가 평범한 사람은 아님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도 가장 부유한 동네의 대저택에 산다는 이 중년여성은 암투병 중에 있었고 바로 얼마 전 뇌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사실 따로 있었다. 작년에 갑작스럽게 딸을 잃었고, 그리고 올해 몇 달 전에 그녀의 어머니를 또 떠나보낸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건강보다도 사실 이 환자는 아직 그 상실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사실, 저는 제 딸보다도 제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요…”


이 환자가 현재 호소하는 비통함의 가장 큰 뿌리는 어머니를 잃어버린 것에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고 아마 그녀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는데 그건 바로 ‘나이 어린 자기 딸이 죽었는데 자기 딸보다도 어머니가 더 보고싶다고?’ 라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 자신이 처한 진짜 상황은 주변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지만 아마도 이 환자는 그 간극이 유독 더 심했던 것 같다. 내 동료가 그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듯이, 이 환자는 주변의 관심과 돌봄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해는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와의 관계란 어떤 것일까. 나도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고 그리고 아예 모국을 떠나고 나서 부쩍 예전과는 다른 각도로 그 관계를 깨닫게 된다. 어렸을 때는 부모자녀관계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끝인 줄만 알았다. 더이상 같이 살지 않으면 그 때부터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으면 그 관계의 의미도 점점 희미해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가장 극한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머니를 부르짖는 그 환자를 보면서, 그리고 나 역시 어디 한 군데 어느 한 사람 마음놓고 편히 의지할 데가 없는 타지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엄마와의 관계란 아직도 그 누구와의 사이보다도 강한 의미가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그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딸을 시집보내던 엄마의 친정엄마, 나의 외할머니가 결혼전에 불러서 이렇게 말했단다. ’정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들어와. 내가 받아줄테니까.’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더 악착같이 결혼생활을 버티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지만 아마 엄마의 존재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너무 힘이 들 때,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이 들 때, 더이상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바닥이 되어주는, 그런 관계. 딸을 잃고, 건강을 잃고, 엄마마저도 잃은 그 환자는 아마 그 바닥의 부재를 실감하고는 끝없이 밑으로 가라앉는 그 슬픔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병실 침대 위에서 공허하게 어머니의 액자를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은 바로 그 바닥을 잃어버린 채 그 공간 속에 불안하게 떠있는 ‘딸’ 이었기 때문이다. 


She is in the womb,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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