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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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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Dec 15. 2020

Neighborhood

소통과 공유, 내 이웃은 누구인가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고부터 세번째로 맡게된 부서는 장기환자들이 주로 입원하는 재활병동이었다. 다른 병동과는 달리 한 환자를 오랫동안 만나고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고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어서 뜻깊은 만남이 더욱 많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나 뿐만이 아니라 그 병동에서 일하는 많은 의료진들과 그곳에서 그야말로 수개월 혹은 그 이상을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 그리고 그들을 방문하고 곁에서 간호하는 환자 가족들도 모두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만났던 이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중의 한 명은 40대의 노숙인 여성이었는데 등쪽에 심각한 감염이 있어 치료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노숙인이라는 특성상 주거환경이 좋지못해 제대로 상처부위를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태가 좀 나아져서 퇴원했다가도 다시 심해져서 입원하고 퇴원하고 하기를 반복하는 환자였다. 그렇다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계속 의미없는 치료를 반복하는 것을 난감해했고 그녀는 차라리 그대로 병원에 쭉 입원해 있기를 더 바라는 눈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환자가 밀려드는 종합병원 특성상 그녀의 안타까운 처지를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언제까지고 맡아줄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건 병원과 의료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도 주거문제가 심각한 샌프란시스코의 사회적 문제이기도 했다.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노숙인환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노숙인 환자들 중에서도 이 병동과 유달리 인연이 많은, 계속 이 병동과 길거리 그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던, 가장 낯설지만 가장 친숙한 이웃이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것은 '어떻게 좀 해달라'는 병동 관리자의 다급한 호출 때문이었다. 병실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등에 커다란 혹이 나 있었고 온 몸이 퉁퉁부어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흐느끼고 있었다. 통증이 너무 심각해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상태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그녀는 의료진들이 자신을 제대로 돌보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매우 거칠게 항의하는 상황이었다. 의료진들이 핑계를 찾아내어 자신을 쫓아낼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노숙인 환자들에게는 종종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특히나 통증이 심했기에 그 상황이 매우 고통스러워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독실한 카톨릭신자였기 때문에 채플린이 찾아와 기도를 해주는 것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고 그렇게 몇 주동안 찾아가서 한번씩 기도를 해 주는 것으로 차츰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상태가 호전되어가고 붓기가 가라앉으며 이따금씩 미소를 보이기도 하고 병실에서 직접 염색한 머리를 자랑하기도 하고 보고싶은 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다가 그대로 고착상태였다가를 반복하며 병원에서 몇 달간을 편안한 내 집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상태가 꽤 좋아지고 걷는게 편안해질 무렵 부터 항상 그녀는 병실보다 복도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는 나에게 같이 병동 복도를 잠깐 같이 걷기를 청해왔다. 겨우 몇 미터 짧은 복도를 걷는 동안 그녀는 마주치는 다른 환자들, 의료진들에게 익숙한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짧게나마 그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청하기도 하고. 처음 만났을 때의 히스테릭하게 비명을 지르던 모습은 어느덧 여유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친절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좀 더 색다르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다른 환자에게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녀와 잠깐 병실을 같이 썼던 환자가 본인이 다른 병실로 옮긴 후에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가끔 들러서 인사도 해주고 말 상대도 해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날은 복도에서 체중계를 가지고 잘 작동이 되지 않는지 낑낑대고 있는 그녀를 보게되었다. 별다른 방법을 찾지못하고 헤매고 있던 중에 그녀는 지나가던 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여어,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 줄 알아? 잘 안되네?”


그녀가 익숙한듯 불러세운 그 남자직원은 나도 병동을 오가며 여러번 마주치긴 했지만 한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서로 업무상 연결고리가 없으면 선뜻 낯선 직원들과 어울리기를 어려워 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사실 이 직원은 너무 무섭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여기야 외모에 대한 차별도 제한도 거의 없는 분위기고 머리모양이 독특하다던지 문신이 많다던지 하는 것은 익숙했지만 얼굴에 전체적으로 큰 흉터가 있고 항상 인상을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중년 남성에게는 선뜻 굿모닝 한 마디도 건네기가 망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인상을 풍기든 그녀에게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편안하고 익숙한 이웃, 전혀 낯설지도 껄끄럽지도 않은 친구같았다. “에이, 이거 뭐 고장났나보네” 하고 털털하게 웃어넘기는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난 항상 삶이 피곤하고 지겹고 불안할 뿐인 이 장기환자들의 병동에도 뭔가 내 생각과는 다른 어떤 풍경이 있다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이 어떤 조건이 붙어있든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나에게는 순간 가장 편안한 내 집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그들이 마주하는 나 자신도, 이 순간에 어떤 옷을 입고 있으며 어떤 상태로 등에 혹을 짊어지고 있든 휠체어를 타고 있든 청소도구를 쥐고 있든간에, 가장 친숙한 이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어쩌면 이 병원을, 특히 이 장기환자 병동을 고통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갇혀있는 공간으로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원래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만을 고대하는 환자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이 곳에서의 시간과 일상, 그리고 소중한 풍경을 지나쳐 버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노숙인 환자는 나에게 그걸 가르쳐주었다. 내가 누군가의 이웃이 되고, 그 사람이 만나는 친절이 되고, 그 사람이 느끼는 친숙한 일상이 되고, 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잠깐의 미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Two heart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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