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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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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Dec 17. 2020

Nature

자연, 소외, 트라우마

날씨가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사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별로 체감하지 못했다. 날씨가 다르다는 것이 삶에 이런 차이를 말하는 구나 하는 것은 아마도 제주도에 처음 막 이사갔을 때에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기는 하다. 원래도 더위를 잘 타는 편이었지만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 후덥지근한 서귀포의 여름은 그야말로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었다. 제습기가 없이는 빨래가 몇일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황당함과, 말로만 듣던 초대형 바퀴벌레와 새끼도마뱀이 집안에 출몰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의 공포는, 기후가 다르다는 것은 일상을 바꿔버리고 걱정거리를 바꿔버리고 아마도 내 기분과 생활양식까지도 바꿔버린다는 것을 알게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걱정거리들이 생겼음에도 나는 제주도를 너무나 좋아해고 그곳에서의 2년은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아마도 내가 캘리포니아를 선택하게 인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유학갈 지역과 학교를 고민하고 있었을 때,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주변 친구 여럿에게 조언을 구했었는데 나에 대해서 그래도 조금 안다고 할 만한 친구들은 대부분 캘리포니아를 추천했다, 내 전공으로는 더 좋은 학교가 대부분 동부에 있었지만, 가만히 학교에 갇혀서 공부만 해도 걱정이 없을 성격이 너는 아니지 않느냐며, 날씨좋은 캘리포니아로 가라는 말에 큰 고민없이 샌프란시스코로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겨울에도 많이 쌀쌀하지 않은 날이면 낮에 반팔 반바지를 입고 동네를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에 흐뭇해하며 지금까지 그 때 나를 이곳으로 보낸 친구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다만 항상 일상이 그렇게 흐뭇할 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므로 때로는 이 사시사철 맑은 날씨와 선선한 가을바람이 메마르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다. 특히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나서 텅 빈 길거리를 처음 목격했을 때의 그 낯설은 기분은, 따사롭게 내려쬐는 봄 햇볕이 마치 이 종말론적인 세상을 조롱하는 위선의 베일 같았다고 할까.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은 눈으로는 그대로인 듯 한데 소리도 향기도 그 무엇도 다 소멸해버린 '가짜 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풍경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바로 이 한발자국 밖의 아름다움이 가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닌, 그 언저리에서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의미하는 듯한 소외감과 박탈감을 병원의 환자들은 많이 호소하고 있었다.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가족들의 면회는 전부 금지되었고 사망한 환자의 유족들도 겨우 한 사람만 잠깐 들여보내주는 정도로 병원은 최대한으로 삭막해졌다. 평소보다 더 많은 환자들이 병원에 갇혀있는 것을 더 외로워하고 두려워했다. 나는 일상에는 다행히 큰 변화가 없었지만 처음 겪는 이 공포와 눈에 보이지 않는 낯선 재앙 속에서 이 봄이 조금씩 잔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런 매일 매일의 메말라가는 계절 속에서 문득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 예전에 석사과정에서 들었던 '생태치료' 였다. 수많은 이론들과 도구들이 난무하는 상담심리학계에서도 상당히 낯설고 특히나 한국에서는 무언가 비학문적인것만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그 기법은 막상 공부할 때는 이걸 언제 쓰게 될 일이 있을까 하며 회의적이었지만 뒤늦게 계속 생각나며 이따금씩 나의 주위를 환기시키고는 했다. 지금 이 전염병의 보이지 않는 공포, 따뜻한 햇살 아래에 적막하게 깔린 단절과 소외가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자연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대자연이 나를 외딴섬으로 몰아넣고 소외시키고 있는 것 같은, 내가 제어할 수도 측량할 수도 예측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그런 위기감 속에서 덩그라니 남아있게 된 미아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같았으면 자유롭게 뛰노는 강아지들과 산책나온 사람들로 북적일 공원이 햇살이 아주 맑은 아름다운 하늘 아래 쥐죽은듯이 고요함을 목격했던 그 순간은 꼭 그랬다 모두가 없어져 버린 세상에 나 혼자 던져진 것과 같이. 


그렇게 이 현상을 하나의 자연으로 또 트라우마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서 나는 소외된 나를 더 발견하고 집중하고 돌보기 시작했다. 특히나 락다운이 막 시작되었던 3, 4월에는 필수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시민이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던 터라 퇴근하는 길에 경찰이 길에서 붙잡고 확인하는 것은 아닌가 두근거릴 정도였다. 이런 가히 묵시적인 풍경을 목격하면서 내 피부에 닿았던 봄의 따뜻함과 병원화단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이 마치 장례식장의 조화와 같이 화려하면서도 참으로 건조하게 기억되었다. 이 글의 말미는 평소의 그림이 아닌 그 즈음에 찍었던 공원의 무지개 사진으로 마무리한다. 진짜 비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지개는 생기는구나 아주 작고 귀여운 무지개. 

 

Rainbow in Duboce Park,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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