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의 벽, 경험의 무게, 무엇이 우리의 입을 닫게 하는가
최근 몇 주 사이에 전미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아시안들을 향한 테러가 계속 뉴스에 보고되고 있다. 총기난사에서부터 길거리의 무차별 폭행, 그리고 더 끔찍했던 것은 틱톡에서 아시안들을 쓰러뜨리는 행위를 챌린지로 놀이삼는 사람들이 보고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작년에 black lives matter 때에도 이 사회의 인종차별의 벽, 서로를 갈라치고 싫어하게 만드는 그 문화적 골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당장 아시안이 그 타겟으로 더 도드라지고 심지어 주변사람 중에도 그 테러의 희생자가 나오니 부쩍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곰곰히 생각하던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이거였다. 그나마 온실같았던 대학원의 테두리를 벗어나 처음 사회에 발을 들였던 병원 레지던트 1년차에 이 인종차별의 형태와 계급화, 그리고 그 영향의 단면을 아주 흥미롭게 보여준 사례가 있었다. 그 병원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모든 분야의 레지던트들이 다같이 모여서 모의환자를 대하는 실습이 있었다. 의사 레지던트, 약사 레지던트, 치과의사 레지던트, 그리고 채플린 레지던트가 각 한명씩 팀을 이뤄서 카메라가 설치된 모의병실에 들어가 환자를 연기하는 사람에게 실제처럼 면접상담을 돌아가면서 하고 나중에 다같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토론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우리팀은 그 구성이 참 흥미롭게도 백인남성 의사, 백인여성 약사, 아시안남성(미국에서 태어난듯한 중국계) 치과의사, 그리고 아시안유학생 남성 채플린(나) 였다. 실습이 끝나고 다같이 수퍼바이저의 지도아래 환자에 대해 토론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딱 그 상황에서 왠지 이 다인종 미국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축소판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 토론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던 사람은 백인여성 약사였다. 백인여성 약사와 백인남성 의사가 주로 의견을 주고받았고 아시안남성 치과의사와 나는 거의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수퍼바이저가 지적해서 의견을 물어볼 때에만 대답하는 정도였다. 지금에 와서도 돌이켜보면 왜 나는 그렇게 조용히만 있었나 조금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그때 내 눈에 가장 흥미롭게 들어왔던 것은 그 아시안남성 치과의사였다. 대화하는 것으로 봐서는 다른 억양이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미국인이었지만 묘하게도 그 두 백인 사이의 토론에서는 한발짝 발을 빼고 몸을 사리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아주 잠깐의 제한적인 상황이었지만 이날의 경험이 주는 느낌은 참으로 그 여운이 오래남았다. 그 실습의 목표가 레지던트들이 다른직종의 일원들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인종, 문화의 일원들을 이해하고 의료현장에서의 다양성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어쩌면 나는 그 의도된 학습을 경험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영어가 아주 편하지만은 않은데다 의학용어도 모르는게 태반이고 무엇보다 환자를 보고 진단하는 관점이 아예 달라서 접점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나는 그 아시안 치과의사가 왜 끼어들지를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지, 훤칠한 외모에 근육질의 덩치 뭔가 이상적인 동양계 미국인상으로 보이는 그가 왜 그 자리에서 가장 불안해 보였을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샌프란시스코의 대학병원, 의료진 사회는 정말로 독특해보이는 곳이었다. 길거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수많은 아시안들이 병원 안에는 신기하게도 매 층마다 다 모여있었다. 특히 아시안은 그 비중이 절반이 넘었고 간호사나 치과의사들은 특히나 거의 삼분의 이가 아시안이라고도 했다.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이건 무슨 현상일까 그리고 이것이 이 사회에 또 어떤 다른 현상과 경험을 낳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시안들은 이 백인중심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서 전문직이 되고 그럼에도 결국은 그 속에서 입을 닫고 또 고립되고 그리고 또 그런 인상을 다른 이들에게 또다시 보여주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그때 시작되었던 것이다.
인종적 편견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도록 그 영향력은 크고 실체는 잡히지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도 쉽게 경험되고 학습된다. 가장 인종적 다양성이 풍부하다고 하는 이 지역, 이 환경 속에서도 단 한 두 사람에 의해서 금방 그 인종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머리속에 각인되어 버리고 그리고 그 각인이 쉽게 거부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실습에서 내가 그 아시안 치과의사에 대해 느꼈던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나에 대해 느꼈던 것처럼. 그리고 그날의 실습이 끝난 뒤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나의 공동체, 아시안 이민자들의 사회로 그 경험과 각인된 이미지들을 안고 돌아왔던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각자 자기의 공동체로 돌아갔을 것이다. 더 이상의 교류도 의사소통도 편견을 무너뜨릴 충분히 다양한 경험도 부족한 내가 원래 속한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