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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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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Oct 31. 2020

Undemonize

생각을 바꾸기, 느낌을 바꾸기, 이미지를 바꾸기, 상황을 뒤집기

한국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혹은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단어였는데 여기서 배운 단어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demonize 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반어 형식으로 바꾼 undemonize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 중의 하나이다. 무언가 벽에 부딪힌 듯한 상황속에서 내가 마주한 이 벽이 실제로는 그렇게 못된 것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선언하는 것, 그게 바로 undemonize이다.


이제 막 뇌에 대수술을 마치고 재활치료를 하려고 도착한 한 환자가 있었다. 겨우 두상이 좀 사람같은 형태가 되었다며 위로하는 의료진들에게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여유가 넘치는 우아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60대의 나이가 되도록 현역으로 잘나가는 변호사인데 이 수술을 하기 직전까지도 자기 인생에 이런 큰 변화, 더 정확히 말하자만 손실이 있을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시종일관 웃으며 따뜻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지만 얼마 후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제가 더 이상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까봐 두려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병원은 여러가지의 다양한 비극으로 가득찬 곳이다.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상실과 고통, 무력감에 당혹스러워하고 절망한다. 그리고 종종 삶을 비관하게 된다. 원래 염세적인 사람이 아니었어도 이 공간안에 갇혀서 모든걸 빼앗긴 기분속에 한 시간 한 시간을 버티고 있다보면 그렇게 되어가는 듯 했다. 나도 이 병원에 아주 잠깐 환자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겨우 두어 시간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 뿐이었는데,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나에게 간호사가 했던 말 한마디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주었었다. "지갑 가져오셨어요? 핸드폰은요? 다른 뭐 귀중품 있으세요? 반지?" 귀중품을 다 잘 빼서 사물함에 넣어두라는 말이었는데 순간 나에겐 이 공간이 안전한 곳이 아니구나 간호사가 분실물부터 챙겨야하는 곳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간혹 자기 물건이 없어졌다며 누군가 병실에 몰래 들어와 훔쳐간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떠는 환자들을 보아도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여긴 무서운 곳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방식으로.


삶을 비관하게 된다는 것, 삶의 관점이 순간 빛이 바랜 렌즈로 바뀌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은 그렇게 여기에 실재해 있었다. 그 60대 환자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는 자기머리가 그런 꼴이 되리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누군가가 자기를 멍청하게 여기리라고도 걱정을 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부터 그녀는 당연하게 누리던 그 정체성을 빼앗기는 경험을 했고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큰 고비를 넘겼음에도 이젠 병원 밖의 다시 돌아가야할 원래 삶의 자리에서 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듯 했다. 그 때 그녀에게 했던 말이 바로 undemonize였다. 삶에 큰 변화가 생겼지만, 이전과는 다른 삶이 되었지만, 그걸 꼭 demonize할 필요는 없다고. 삶에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의 전환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고 속성이라고. 그것이 내가 아는 내가 배운 믿음이라고 전해주었다. 그녀는 그 단어를 메모하면서 옅은 미소를 띄웠다. 당장에 이걸로 빛이 흐려진 렌즈가 다시 총천연색으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바랜 색깔의 렌즈도 항상 끔찍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걸로 충분히 좋은 일이니까.


 

Burst of heart,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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