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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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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Oct 31. 2020

Vulnerability

취약함, 어려움, 피로감, 무기력함, 힘듦

예전에 일하던 병원에서 그 층의 모든 환자들을 통틀어 가장 오래 입원하고 있던, 그리고 의료진들이 가장 골치아파하던 환자가 있었다. 의학적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아직 죽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생명을 더 연장해야 할지 치료를 포기하고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야할 지도 결정할 수가 없고 (스스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기에 선택을 계속 번복하는데다 대신 결정해줄 가족이나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로 죽고싶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하지만 또 살고 싶다는 말도 반복적으로 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비롯한 chaplain들에게 있어서는 오랜세월의 고민끝에 드디어 종교를 갖기로 결심한 (이 주제가 나와 동료들에게 그가 가장 자주 상담했던 것이었다), 그런 특별한 사람이었다. 어찌보면 그는 그 큰 대학병원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있지만, 병원과 요양원과 수술실과 회복실 사이 그 어느 중간에서 갇힌 사람과도 같았다. 간략히 설명한대로 그에겐 뚜렷한 어떤 방향이 정해지질 못했기 때문에 어디로도 오갈 수가 없고 어떤 식으로도 진행이 안되는 사람이었다. 환자의 입장에서도 참으로 답답하고 고통스러워했고, 의료진의 입장에서도 끊임없이 의료진을 불러대고 의미없는 고통만 호소할 뿐인 참으로 골치아픈 사람이었다.

그의 병실앞을 지나갈 때마다 난 마음이 참 어려웠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신음섞인 소리를 지르지만 그때마다 간호사에게 얘기하면 "조금전에도 확인했어요. 안타깝지만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요" 라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내가 병실로 들어가서 대화를 해보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그는 의료진을 불러달라는 말을 할 뿐이라서, 그의 힘든 상황에는 도통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이 없어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그를 체크하러 병실에 들렀는데 그 날은 무언가 상황이 좀 달라보였다. 병실 벽에는 생일축하 풍선과 리본들이 달려있었고 (풍선 몇개가 떨어져서 조금 분위기가 묘해보이기도 했지만) 화병에는 꽃도 꽂혀있었다. 그리고 그는 평소보다 고통이 훨씬 진정된 모습으로 신음을 거의 내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앉아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간호사분들이 생일축하를 해주셨나봐요?" 나즈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저, 시력을 잃었어요..." 그의 대답은 60번째 생일선물로는 참으로 가혹한 것인듯 했다.

몇 분간의 정적이 흐른 뒤, 내가 꺼내기로 결심한 말은 '사과'였다. 병실앞을 지나가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지만 그냥 지나쳐야했었던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그는 입을 열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 계란을 좀 먹여주실 수 있나요?" 그는 바로 앞에 놓여있는 식판위의 스크램블 에그를 나에게 떠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조금 당황하고 주저했지만 이내 그가 원하는대로 계란 한 숫가락을 떠서 그의 입에 가져다주었다.

"맛있네요... 맛있어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우고 우물우물 계란을 씹던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약간은 우스운듯 이 말을 했다. 그리곤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고통스러워요. 전 계속 시체가 되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상을 해요."


Vulnerability라는 말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다. 명확히 한국말로 풀이하기가 오묘한 구석이 있지만 이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자면 '이 상황 속에서 유독 취약한 조건에 놓인' 의 의미가 될 것 같다. 병원은 모두가 같은 구조의 병실에 누워 같은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고 같은 밥을 먹지만 막상 그 사람들이 거기에서 버티는 그 살아냄의 환경과 조건은 사실 같지않다. 그에게는 '선택'이라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선택의 명확함'이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도 고를 수 없다는 상황은 그를 고통의 시간에 더 취약해지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친절로부터도 고립시켜갔다. 회복, 치유, 포기, 죽음 어느 것도 고를 수 없고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고 자신이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그의 눈물이 바로 내가 배운 vulnerability였다. 옆방의 다른 환자는 회복이 되어서 나갔고 또 다른 환자는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하고 요양원으로 갔고 혹은 다른 병원으로 다른 수술실로, 다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조언을 받거나 지지를 받거나 결단을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할 때 그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삶으로부터 무언가를 박탈당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것이 내가 목격했던 그리고 내가 공감했던 그 순간의 그였다.


Beauty and Fea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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