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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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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Nov 26. 2020

Encounter

만남,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같은 것을 보게 되는 의미있는 순간

미국에서 처음 병원일을 시작했을 때,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낯설고 나와는 동떨어진 것 같은, 나 혼자 이 공간에서 붕 뜬 채로 도통 적응을 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어떻게 말을 걸고 인사를 하고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할지 모르겠고, 내가 이 무리에 어떻게 끼어들어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할지가 막막하기만 하던 1개월차에 이 환자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40대의 백인남성은 의식은 있으나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곁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환자의 배우자는 휠체어를 탄 40대의 아시안 남성이었다. 보호자로 와 있는 그는 다리 한쪽, 팔 한쪽이 각각 절단된 상태로 휠체어에 앉아 병실 한쪽 귀퉁이에서 환자를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이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일단은 침착하게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에게 들은 그들의 사연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삼년 전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 아시안 남성이 팔과 다리를 잃게 되었고 휠체어를 타야했지만 그의 배우자인 백인 남성이 그를 잘 돌보아 주며 이 샌프란시스코 외곽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 나가고 있었던 게이커플이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전 멕시코의 휴양지로 휴가를 갔다가 현지에서 그 멀쩡하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에 갔더니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해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몇일 전 이 병원에서 다시 제대로 진찰을 받은 결과, 앞으로 겨우 수 개월 정도 남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이다. 병원에서는 더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그들은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내일 비행기로 남편의 고향으로 같이 돌아가 그 곳 요양원에서 마지막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고. 이 이야기를 다 듣고나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보통은 뭐라도 위로의 말을 자동적으로 건네게 될 텐데, 그 자리에서 그 사람에게는 도저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딱히 나에게 기대하는 것도 요구할 것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음…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요?”


이 말은 보통 일상적으로 환자들이나 가족들에게 많이 건네는 질문이었지만, 그 날 그 순간에는 조금 의미가 달랐다. 그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이 만남을 끝내려고 하고 있었지만, 내가 다시 한 발을 찔러넣어 닫히는 문을 잡은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병실에 오래 앉아 있는 보호자들이 많이들 피곤해하기 때문에 대화를 그만 하고 싶어하는 것 같으면 그들에게 짧은 인사만 건네고 뒤돌아서는 것이, 그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왠지 모르게 그렇게 뒤돌아설 수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휠체어에 앉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던 그 사람이, 나에게 그저 보통의 스쳐가는 보호자 1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의 사연도 사연이지만, 아직 어색한 영어를 하는 아시안계 이민자여서 였을까, 주위에 온통 백인들 뿐인 지역에서 살다가 이제는 아예 더 외진 시골의 요양원으로 그 휠체어를 끌고 가야하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 이방인 중의 이방인인 그의 처지 때문이었을까. 굉장히 낯선 상황의 낯선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중환자실 구석에 앉아있는 아시안 이민자 중증장애인. 아마 다른 의료진들도 어쩌면 안쓰러운 마음은 비슷하게 느꼈을 지 모르지만, 뭔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것만 같은 이질감, 이 풍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는 당혹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길을 잃어버린 듯한 막막함, 그게 내가 그 순간에 그와 특별하게 만나게 된 지점이었다. 그리고 곧 환자인 그의 남편도 잠에서 깨어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평소보다 꽤 긴 방문으로 이어졌지만, 그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그 병실을 돌아서서 나올 때 나는 이루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복잡하고 벅찬 감정이었다. 그들의 안타까운 상황에 깊은 슬픔을 공감하면서도 그들과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몹시도 기쁘고, 무엇보다도 감사했다. 뜻하지 않았던 작고 의미있는 만남,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길을 잃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길은 아닐지라도 나의 위치를 찾게 되는 그런 고마운 기회, 그 때의 그 사람은 나에게 이런 의미있는 순간을 가르쳐주었다. 


Orchid,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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