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는 여유
"Breakfast is my favorite meal."
병원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같이 아침식사를 하러 가던 동료에게 들었던 말이다. 나는 처음에는 도통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심식사보다도, 저녁식사보다도 아침식사가 더 좋다니? 대체 그게 어떻게 나오는 말인거지? 식사에 관한 관습이나 개념, 그리고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를 차츰 발견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미국에 처음와서 대학원을 다닐 때에는 미국인들의 식사가 한국과 그다지 다른 것을 잘 느끼지 못했다. 같이 실생활에서 밥을 먹을 일이 자주 없었고, 가끔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긴 했지만 마침 학교 까페테리아에서 나오는 그 점심식사는 샐러드, 빵, 고기, 커피, 디저트까지 한꺼번에 다 나오는 풀코스형태여서 그냥 한국에서 먹던 샐러드바의 축소판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병원에서 정말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흔하게 먹는 아침식사, 점심식사의 형태를 보니 그것과는 꽤 많이 달랐다.
"샐러드는... 음... 밥이야 미국에서는." 학부시절에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에게 들었던 말인데 나는 이 말이 십수년 후 내가 미국병원에서 점심을 사먹기 전까지는 전혀 이해가 안되었다. 사실 들었으나 그게 무슨소리야 하고 넘겼다가 나중에 불현듯 깨달으며 떠오르게 됐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지역 사람들이 유독 샐러드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보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샐러드만 한접시를 퍼서 그걸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샐러드는 뭐랄까 식전에 먹는 애피타이저같은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문화적 배경으로는 왜 저 사람들은 점심에 고작 저것만 먹을까 하는 의문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으나, 계속 보다보니 아 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테이크아웃 중국음식점인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흰쌀밥, 현미밥, 데친야채 중의 하나를 고르고 그 위에 고기류 메뉴를 추가하는 시스템을 보고나서는 샐러드=쌀밥 이라는 공식이 십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한번은 내가 점심시간에 수프 한대접, 빵 한 조각, 샐러드 한접시를 트레이에 담아서 왔더니 동료가 '그걸 지금 다먹게?' 라는 눈으로 쳐다보는걸 경험하고 다시한번 내가 생각했던 '서양식 식사'가 사실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시 아침밥 이야기로 돌아가서, 돌이켜보면 난 아침밥을 꽤 오랫동안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눈뜨자마자 먹기싫은 밥을 억지로 국에 말아 입에 쑤셔넣고 종종 탈이 났던 기억이 강했기 때문에 나에게 아침밥은 억지로 먹어야하는 고된 일상의 의무, 그런 상징이었다. 어쩌면 항상 바쁘고 항상 꼭 해야할 것들이 많았던 한국사회와 그 문화의 흔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아침밥을 먹여야한다는 의무가 있었고 난 그 밥 한 공기를 그 자리에서 최대한 빨리 먹어치워야한다는 의무가 있었다. 서로에게 고단한 삶의 무게같았던 그 아침밥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혼자 살게 된 대학생 시절 이후로는 당당히 아침밥을 거부해왔던 것 같다. 내 삶의 해방, 그 상징으로서. 그랬던 내가 아침밥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된 일은 생각지않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로 생겨났다. 병원에서 우리부서는 하루종일 일과가 정신없이 바쁘긴 하지만 하루 스케줄은 긴급하게 콜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각자 알아서 정하고 융통성있게 설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독특했던 것은 아침식사 시간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지만 알아서 필요한만큼 여유있게 가지라고 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종종 동료들과 아침회의가 끝나면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깨알같은 여유를 만끽하면서. 주방에 있는 셰프에게 미키마우스모양 팬케익을 주문하는 그런 아침식사는 정말로 하루에 한 줌의 기운을 부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든든히 아침밥을 먹고나면 점심엔 정말로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고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수프 한대접 혹은 샐러드 한접시면 충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게 쌀밥을 야채로 대신하게 되는 순간일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에게 '나 아침밥을 좋아하게 됐어' 라고 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