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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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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Oct 31. 2020

Intersectionality

교차성, 왜 하필 난 ** 이면서 ## 이고 또 동시에 @@ 인 것인가

석사논문 주제를 구체화할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우연히 이 한 단어 "intersectionality" 를 친구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인권운동 계에서 트렌디하게 많이 쓰는 단어 정도로만 들었지만 이 단어는 내가 처한 상황, 혹은 어려움을 겪는 다른 사람들의 그 상황의 복잡성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주 유용한 개념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복잡하고 머리아픈 상황과 사정들을 듣고 이해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단어다. 병원에서 내가 맡았던 환자병동은 미 전역에서 성별정정을 원하는 트렌스젠더들이 수술을 위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리고 굳이 성전환수술이 아니더라도 트렌스젠더 환자들이 다른 치료를 위해서도 다른 병원보다 좀 더 많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트렌스젠더라 하면 tv에 나오는 드랙퀸 (공연을 위해 여장을 하는 사람들) 같은 이미지밖에는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환자로 다양한 트렌스젠더들을 만나게 되니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전체의 극소수에 한정된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실제로는 male to female 환자 자체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적었고 대부분은 이미 호르몬 치료를 수년간 해온 사람들이라서 외모만 봐서는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

내가 intersectionality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환자는 이 중에서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의 환자였는데 male to female 트렌스젠더이고 성별정정 수술을 수년전에 했지만 이번 입원은 다른 장기에 심각한 손상이 있어서 오게 된 사람이었다. 그녀는 멕시칸계 미국인으로 영어를 할 수는 있지만 아주 능숙하지는 않았고 스페인어 통역을 통해 대화를 할 때 훨씬 더 상호작용이 좋았다. 그녀는 30대 후반의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어떤 이유로 가족들과 떨어져 노숙자가 되었고 심각한 약물중독으로 건강상태가 전반적으로 나빴으며 정신적으로도 극도로 불안했고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호르몬치료가 수년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그녀는 골격이 다시 남성처럼 변하기 시작했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난 모습이었다.

그런 처음 그녀를 만난건 담당 간호사의 요청때문이었다. 그녀는 극도로 외로움을 호소했고 밤새 울며 잠을 뒤척인 상태였다. 환자가 컨디션이 그렇게 나빠지면 결국 어떤 식의 치료도 어려운 상황이 되고 그 때 환자를 위로하고 진정시켜 치료가 다시 재개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해하는 사람, 목이나 입을 다쳐서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 고통이 심해서 의사소통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운 사람 등등 많은 환자들을 만났었지만 그녀는 그 중에서도 정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 여러가지가 한데 겹쳐있는 중증환자였기에. 한 가지의 문제만 있어도 이 병원에 혼자 갇혀서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거미줄처럼 엮인 몇겹의 어려움속에서 지칠대로 지친 그 사람에게는 '답'이라는 것이 없어 보였고 '위안'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는 듯 했다. 그녀 자신 그 자체가 희미해진 듯한, 눈물로 목이 쉬고 텅 빈 눈으로 고통스러운 침을 삼키는 것만이 24시간의 전부인, 온 몸이 거미줄 속에 칭칭감긴 곤충같은 느낌이었다.

Intersectionality를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 항상 이런 가정을 생각해보곤 한다. 만약 이 모든 상황이 한번에 다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어땠을까 그러면 좀 나았을까. 트렌스젠더가 아니었다면, 라틴계 이민자가 아니었다면, second language speaker(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가 아니었다면, 노숙자가 아니었다면, 약물중독자가 아니었다면,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없었더라면, 가족이나 돌보아줄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하지만 얄궂게도 이런 상황은 모두 한꺼번에 일어났고 서로 얼키고 섥혀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 중의 소수자로 몰아가는 그 상황은 그녀가 더 고립되게 하고 외로워지게 하고 할 말을 잃게 만들고 '내가 그냥 나로서 존재하는 것'을 더 회의하게 만든다.

여러번의 방문에 걸쳐 조금씩 대화를 해 나가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처한 수겹의 어려움 속에서 가끔씩 한 두번 마른 소리의 신음을 내거나 허공으로 고개를 들고 한 두 방울의 눈물을 떨굴 때, 무언가 알아들을수 없는 한 두 마디의 단어를 힘겹게 내뱉는 그 무거운 공간에 같이 있어주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을 치워주러 들른 한 직원이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았는데 난 그 때 깨달았던 것 같다. 정말로 뭐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인지.

"How are you, senorita?"  

아마도 그녀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듯한 그 사람은 익숙하게 몇마디 대화를 건넸고, 난 그 때 아주 희미한 듯 했지만 의미있는 작은 미소를 그녀의 얼굴에서 본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가 아주 힘들게 귀하게 얻었지만 어쩌다보니 잃어버리게 되었던, 그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 속에서 퇴색되어버렸던 그녀 자신의 모습, 트렌스젠더 여성이라는 정체성, 그녀 자신 말이다.

나도 이민자로서, second language speaker로서, 아시안으로서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난 누구라고 설명할 수 있는건지, 나는 뭐였는지를 고민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때 나를 나로서 봐주는 어떤 시선, 말 한마디, 나를 발견해주는 작은 미소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이 병실에서 배웠던 것 같다. 여러 겹의 교차선 한 가운데에 존재하는 작은 하나의 점 같은 나. 그건 한 줄 한 줄 나를 더 무겁게 옭아매는 거미줄이기도 하고 혹은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를 특정해주는 좌표이기도 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내가 되어갈 때,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뭘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어떻게 불리우는 사람이었는지를 잊어갈 때, 다시 나의 위치를 찾아주는, 그런 소중한 목소리말이다.


 

Spider web,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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