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사이, 길목, 과정
일년동안 함께해온 동료 겸 수퍼바이저를 떠나보내면서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을 하나 선물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제목은 Fever. 달리는 말의 머리와 상체 부분을 표현한 그림으로 오른쪽 하단에는 날아오르는 spirit이 같이 표현된 그림이다.
Fever. 발열증상이라는 것은 아픈 사람에게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신체반응이다. 그리고 나의 직업은 그런 신체반응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위안을 주는 일이다. 아프면 열이 나고 열이나면 그 부수적인 결과로 몸은 더 힘들어진다. 사람들이 주로 호소하는 고통은 거기에 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피부가 간지럽고, 식욕이 없고, 잠을 잘 수 없고, 그 결과로 또 다시 피곤해지고 짜증이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이 하는 말을 누군가가 들어주고 있다는 혹은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면 간간히 나는 아주 약간의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을 조금 바꿀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럴 때에 내가 종종 하는 이야기는 지금의 당신, 이 상황은 몸이 회복되어져가는 과정에 있다는 말이다. 당신은 몸이 아픈 상태와 건강한 상태 그 중간 어느 쯤에 있다는. 그리고 이건 환자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나 자신에게 되짚어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완전히 아픈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건강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 완성했다거나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완전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열을 내고 통증을 느끼며 괜찮아져가는 길로 가는 그 어느 중간쯤에 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이 일을 통해서 배운 나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삶은 항상 어느 한쪽, 분명하게 갈린 명확한 영역에만 있지 않았다. 항상 깨닫고보면 어중간하고 애매한, 그 사이에 있었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환자와 건강한 사람 사이에. 젊은이와 중년 사이에.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 막 물건너온 사람과 정착한 이민자들 사이에.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에.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사이에. 무지함과 유식함 사이에. 난 지금도 그 어떤 영역에서 내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알 방법을 모르겠다. 다만 내가 계속 연습하고 익숙해지려고 하는 것은, 간호사들이 환자들에게 항상 물어보는 것처럼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어느정도 아파요? 1에서 10까지 중에 몇?'
그러면 난 숫자를 고를 수 있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어디를 거쳐왔는지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모호한 영역을 말로 풀어내는 능력을 체득해 나가는 것이, 내가 하는 일, 나의 정체성, 그리고 내가 가장 자주 써먹는 말 spiritual journey 인 것이다.
나는 아주 행복하지도 않고, 백퍼센트 건겅하지도 않고, 컨디션이 정말 좋은 것만도 아니고, 기분도 살짝 나쁜 상태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과정중에 있다는 생각, 1에서 10사이 어디쯤인가에서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조금 더 편안하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은 journey이기 때문에. 모든 시간은 과정이고 진행중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 완전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아도,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