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성찰 힐링 발견
미국생활 사년차, 매번 어딘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기소개를 할 때면 유독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문화에 들어와서 살고 있다는 걸 다시끔 깨닫게 된다.
대뜸 이름부터 얘기하는 이 미국식 대화는, 어디 출신이고 이곳 생활이 몇년 되었는지를 공유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거의 필연적으로 두 세 마디 안에 내가 하는 일이 무언지를 소개해야 하는 타이밍으로 귀결된다. 그때마다 내 직업을 영어로 들은 사람들은 열에 아홉이 머리를 갸웃거리고 그게 무슨 단어인지 되묻는다. 그리고 난 단 한 문장으로 다시 설명을 해주는데 그러면 보통 아~ 가 나온다.
그리고 난 그 말을 해놓고 아 잘 설명했구나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사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을 한 것에 대해 묘한 기분이 된다. 요즘말로 현타가 온다고 해야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내가 지금 서 있는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어중간한 그 위치를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내 직업은 영어로 chaplain이다. 사실 이 일을 한지가 7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한국어로 뭐라고 번역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병원에서 이 일을 하고 있으니, 간혹 한국인 환자에게 한국어로 이야기할 상황이 올 때 '저는 원목이에요. 여기 병원에서 일하는 목사요' 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 기반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종교생활 자체가 굉장히 희귀해진 이 지역에서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야 할 때 내가 하는 말은 'I pray for patients.' 이게 바로 그 ah~ 를 얻어내는 쉬운 설명임과 동시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내가 누구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그 말이다.
거의 매일 최소 서너명의 사람에게 계속 나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일상을 살다보니(매일 새로운 환자나 환자가족들을 방문하고 나를 소개하는 것이 주 업무라서) 나 자신을 번역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계속 더 깊게 파고들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생활이 나에게 가르쳐 준, 오묘한 삶의 의미와 가치 혹은 미학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어져서 글을 쓰기로 했다. 나를 설명하는 방법을 더 연습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걸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더 익히고 싶어서. 그게 내가 알고 있는 힐링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