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쓰는 글 4
이제는 제법 바람이 따스하다. 슬슬 봄이 오는 것 같다. 볕이 좋은 오후에 집을 나서는 건 내가 좋아하는 모먼트 중 하나. 한가함이 더 많았던 어제의 나는 작은 단어장을 사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두곤 했다. 만년필로 쓴 글자 획 끝에 맺히는 진한 점, 걷는 나보다 늦게 따라오는 트렌치 코트 끝자락 같은 것들을 나는 좋아한다.
논밭상점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한 자도 적지 못했다. 휴대폰을 손에서 떼지는 못했는데, 자의로 손가락을 움직일 힘이 퍽 드물었던 것 같다. 원래라면 집으로 돌아와 여러 번 깊은 숨을 푹 푹 내쉬고 오래 자며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할테다. 신기하게도 멀쩡한 내 몸이 이상했다. 고된 일 이후의 가뿐함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아무래도 친구가 생겼다는 든든함 덕분인 듯하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우리가 서로를 친구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생경하고 또 기쁘다. 나와 벗들은 하루종일 서서 포장을 하고, 가끔은 밭에서 비닐을 걷거나 민트 혹은 꽃을 땄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 우리는 식탁에서 마주 모였다. 식사는 그 순간의 나 뿐 아니라 내일과 모레의 나를 살게 한다. 식탁 곁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얼굴과 이야길 맞대는 건 큰 힘이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다시 실감한다.
농부의 모습을 떠올린다. 밭에서 여러 초록 것들과 함께 몸을 굽혔다가 폈다가 앉았다가 일어나는 장면이 떠오른다. 쉽게 떠오르는 농부의 일과는 달리, 우리는 ‘밭일’보다 ‘포장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렇담 나는 논밭상점이 아닌 쿠팡에 다녀온 것일까. 생산자님은 논밭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여러 식구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하셨다고 한다. 그러다 포장요정의 일도, 하루종일 밭에서 로즈마리나 딜이나 민트를 자르는 일도 모두 농부의 일이라고 생각하셨다고. 그러니 나도 아주 잠깐 농부로 살다 온 셈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돌아가지 않는,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있는 모든 농사의 과정을 다시 한 번 톺아보았다.
때때로 다른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다르고도 같은 삶과 마음으로 살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퍽이나 큰 복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