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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tasmo Jan 07. 2024

지금이 딱 좋아, 시와 산책

긴 터널을 걸어온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2023년 나의 키워드는 회복이었다.

회복이라고 적었지만 회복이란 단어 안에 치유, 생존 이런 단어들이 숨어있다.


오랜 기간 내 삶의 큰 주축은 생존이었다. 살아야 하는 것, 살아내야 하는 것.

즐거움도 안정감도 없이 버티다 보면 살아지는 게 나의 하루하루였다. 2023년이 오기 전 나에게는 쓰나미 같은 일이 덮쳤고 나는 버텨야 했다. 붙잡을 수 있는 기둥도 없이 파도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쳐있는 나를 돌봐야 했고 살아내야 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나는 이 두 권의 책으로 버티며 한 해를 보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한정원 작가님의 에세이 <시와 산책> 과

하수정 작가님의 그림책 <지금이 딱 좋아>

하수정작가님의 작업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지금이 딱 좋아>를 제일 좋아한다. 모든 글 하나하나가 이유가 있고 긴 산문을 하나로 줄인 것처럼 그 뒤 이야기들이 있었다.


여기서 세상 다 보인다.

여 다 있는데, 뭣 하러 밖에를 나가….


애순 씨의 혼잣말로 그림책은 시작한다. 그렇게 애순 씨는 쉬지 않고 대화한다. 정갈한 방 안에 정든 민식이청소기, 영순냉장고, 봉선여사전기밥솥 등등등과 함께. 한마디한마디 고마워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렇게 다정한 애순 씨는 자신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보낸다. 창밖을 바라보지만 그저 바라볼 뿐, 세상은 그저 바쁘게 돌아갈 뿐 애순 씨는 꽃무늬신상 나들이 옷도 걸어만 둔 채 자신만의 안식처에서 자신만의 친구들과 안락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순식간에 쓰러진 건지 애순 씨는 까무룩 기척이 없고 걱정하는 애순파라다이스 멤버들은 걱정에 소동을 일으킨다. 시끌시끌 소리 지르고 SOS를 보낸다. 그 소동에 경비실에서 아래층총각, 경비원, 요양보호사가 줄지어 들어와 "고애순 씨! 고애순 씨!" 이름을 부른다.

다행히도 잠시 후 애순 씨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깨어난다.


모두가 떠난 거실에서 애순 씨는 잠시 생각한다.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기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이 장면이다.



애순 할머니의 두 손 위에 살포시 올라온 한 줌의 햇볕

손으로 쥘 수는 없지만 마음에 선명히 새겨지는 따스함.

이 장면은 유독 그 따스함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지치고 온기가 필요할 때면 이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어느새 머릿속 이미지와 함께 내 마음속에서 두 손을 모아 햇빛을 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피곤하고 늘 쉽게 지쳐하는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올라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나에게도 햇볕은 내리쬐지, 햇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깐. 이런 마음으로 햇빛으로 한걸음 더 다가갔다.


2023년을 다 보내고 연말이 되자 남들처럼 한 해를 돌아보았다. 남들이 보기에 별다를 것 없는 나의 한해였지만 내 마음속은 스스로를 계속해서 다독이고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며 함께 걸어왔다. 내 머릿속에 그려진 나는 폐잔병이었다. 혼자 걷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걸어야만 했기에 어떻게든 걸어왔다.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날이 찾아오면 햇살의 입자하나하나를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듯 음미했다.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나를 위해 비축하듯 몸을 웅크리고서 햇빛아래 누웠다.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는 연습을 했다. 괴로움이 올라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해서 내 생각을 써 내려갔다. 나의 감정들을 파일하나에 쏟아붓고 제목을 간단히 달아주고 저장하고 하나씩 구슬을 모으듯 모아두었다. 그렇게 구슬을 파일하나에 톡 털어놓고 나서 그 깊은 감정에 머물렀던 나는 탈진한 채로 누워있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아파하는데 나의 기력을 다 쓴 것일까? 더 가볍게 살아갈 수 있었던 순간을 나 스스로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 것일까? 아니, 그저 나는 걸어왔다. 내 감정이 어디로 가는지 계속 지켜보며 걸어왔다. 더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내가 버텨야만 했던 이유들로 인해 내려가지 못하고 나를 위로하고 도닥이며 걸어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연말이 되니 무척이나 피로감이 느껴졌다. 내가 회상한 한 해는 생존하느라 모든 게 소진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긴 잠을 잤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내가 귀하게 여기는 한 구절이다.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 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늙음은 버젓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결과일 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열차가 완전히 정지하기 전에 그러하듯, 흔들림 없이 잘 멈추기 위해서 늙어가는 사람은 서행하고 있다.

반면 나에게는, 지나야 할 풍경이 조금 더 남아 있다. 써야 할 마음도 조금 더 있다. 그것들이 서둘러 쓰일까 봐 혹은 슬픔에 다 쓰일까 봐 두려워, 노랑이처럼 인색하게 굴 때도 있다.


시와 산책 중에서



한정원 작가의 마음을 가끔 생각한다. 작은 것들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듯 위로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매혹적이고 그 서술방식이 또한 섬세해서 시와 산책은 정말 많은 이들이 사랑한다. 그 마음. 아픔과 고독과 아름다움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이 탐나고 끌려가면서도 나만큼은 이 후미진 골목이 아니라 도시의 가장 찬란한 곳에 서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대치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탐독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시선. 그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었다.


그 절절함이 아팠고 벗어나고 싶었었다. 그곳에서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고 사랑은 티브이 속 단정한 집 식탁 위에 있다고 느껴졌었다. 채워지지 않은 것, 그저 호수를 바라보는 마음, 저 노래하는 새의 이름은 무엇일지 찾아보는 마음, 그 새들이 어디로 갈지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는 마음. 그런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못한 채 나는 미완성에서 어떻게 도망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 책을 읽으며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물지 못한 나를 돌아보았다. 다채로운 언어로 말할 수 있었던 감각들을 놓친 채 반짝이는 것들로 나를 감추려 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고 나답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지만 하지만 간혹 제법 내 안의 반짝이는 걸 찾아보려고 뒤적거렸던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풍경 속에 때론 엑스트라였다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들을 반복하며 시간이 흘러왔다.




2024년이 시작되었다. 달력의 마지막장을 뜯어버리고 새 달력에 빼곡히 기념해야 하는 날과 축하해야 하는 날들을 적었다. 쉴 수 있는 날을 세어보고 한 해 언제쯤 여행을 가볼까? 생각도 한다.


일상은 그저 일상대로 자기 역할을 하며 지나갈 것이다. 2023년 지나온 날들이 버거워서 패잔병의 마음으로 나를 부축하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회복'이란 2023년의 키워드에 맞게 회복이 되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단지 나는 지쳤었고 위로를 구했고 두 권의 책을 버팀목 삼아 파도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새해가 되었는데도 지난 한 해의 피로감에서 벗어나질 못해 계속되는 늦잠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오늘까지만 눈감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두 권의 책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 늙어버린 마음. 그래서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온기를 한가득 모아 연료 삼아 들로 산으로 다니고 싶다. 부딪치고 풀어내고 가끔은 함께 모여 울고 소리 내어 낭독하는 순간도 맞아보고 싶다.

그런 온기를 나누는 시간이 잠시 머릿속에 반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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