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장다리밭>
이문구
장다리 배추밭에
노란 배추꽃
꽃잎보다 노란
노랑나비 한 쌍
꽃잎처럼 날아와
보이지 않고.
장다리 무밭에
하얀 무꽃
꽃잎보다 하얀
흰나비 한 쌍
꽃잎처럼 날아가
보이지 않고.
⟪개구쟁이 산복이⟫(창비 1988/2017)
‘장다리’의 뜻을 몰라 검색해 보니 ‘무, 배추 따위의 꽃줄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다리 배추밭’과 ‘장다리 무밭’은 꽃대가 올라온 배추밭과 무밭의 정경일 것입니다. 이 배추밭과 무밭을 배경으로 노란나비와 흰나비가 한 쌍 날아옵니다.
이문구 동시의 특징 중 하나는 정형적인 시형입니다. 이 시 역시 7·5조의 음수율과 1, 2연의 대구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형식뿐만 아니라 배추밭과 무밭, 노랑나비와 흰나비, 한 쌍과 꽃잎의 보이지 않음의 내용 역시 완벽한 짝입니다. 이 짝의 클리셰의 안정감과 편안한 약속. 그런데 이 시는 이 상투성 한 음절로 훌쩍 넘기며 날아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