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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미 Nov 23. 2018

편안한 약속 너머로 훌쩍

이문구, <장다리밭>

장다리밭 

이문구



장다리 배추밭에 

노란 배추꽃 

꽃잎보다 노란 

노랑나비 한 쌍 

꽃잎처럼 날아와 

보이지 않고. 


장다리 무밭에 

하얀 무꽃 

꽃잎보다 하얀 

흰나비 한 쌍 

꽃잎처럼 날아가 

보이지 않고. 


⟪개구쟁이 산복이⟫(창비 1988/2017)



‘장다리’의 뜻을 몰라 검색해 보니 ‘무, 배추 따위의 꽃줄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다리 배추밭’과 ‘장다리 무밭’은 꽃대가 올라온 배추밭과 무밭의 정경일 것입니다. 이 배추밭과 무밭을 배경으로 노란나비와 흰나비가 한 쌍 날아옵니다. 


이문구 동시의 특징 중 하나는 정형적인 시형입니다. 이 시 역시 7·5조의 음수율과 1, 2연의 대구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형식뿐만 아니라 배추밭과 무밭, 노랑나비와 흰나비, 한 쌍과 꽃잎의 보이지 않음의 내용 역시 완벽한 짝입니다. 이 짝의 클리셰의 안정감과 편안한 약속. 그런데 이 시는 이 상투성 한 음절로 훌쩍 넘기며 날아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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