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주苏州
9시 오픈런을 할 요량으로 첫 정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오픈 시간이 7시 반이었다. 오픈런을 추구하는 이유는 고요한 정원을 경험하고 싶어서다. 사람이 적은 정원을 감상하는 것과 붐비는 정원을 감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9시 조금 넘어 도착한 망사원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두꺼운 정원 책을 넣은 가방은 무거웠고, 5월 초의 소주는 무더웠다.
첫날 답사지로 결정한 망사원과 창원은 한국 정원을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들만큼 좋았다. 중국에서는 작은 정원에 속했지만, 한국으로 치면 가장 복잡한 정원 언어가 있는 소쇄원 정도의 크기였다. 바닥 포장의 재료는 자갈, 벽돌, 판돌 등으로 다양했다. 뿐만 아니라 학, 호리병 등 다양한 장식도 볼 수 있었다. 새하얀 벽에는 다양한 형태의 문과 창이 나있었다. 재료와 문양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공간의 변화 역시 다채로웠다. 하나의 석가산이 동굴, 계단, 전망대가 되기도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 변화도 실내에서 실외로, 회랑에서 정원으로 여러 가지였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동선이 하나인 법이 없었고, 지도를 들고 몇 번을 다시 돌아가야 전체 평면도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중국정원을 보고 느낀 것은 부유함이었다. 하늘을 제외한 모든 것이 사람의 손을 거쳤다. 초반에는 황홀감에 휩싸였지만 반복되는 정원언어에 지치기 시작했다. 사림원에 갔을 때는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 정원에서나 가장 중요한 구조물인 석가산이 너무 지나쳤다. 한번 들어서면 끝없이 오르고 내리고, 동굴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끝이 날줄 몰랐다. 빠져나갈 방법 없이 모든 코스를 완주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다. 먹다가 물리는 중국음식처럼 느껴졌다. 사림원 석가산 미로에서 겨우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샤워를 하고 나와 식당에서 맥주를 시켰다. 사림원 석가산에서 치른 곤욕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술과 함께 나온 안주는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서 먹는 기름진 중국음식을 중국에서는 맛볼 수 없었다. 사림원의 석가산이 물린다는 느낌은 제대로 알지 못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미리 중국의 조경학과 교수님과 연락을 했었다. 창랑정 앞 카페에서 만난 교수님과의 대화는 무척 유익했다. 1997년 중국이 소주 중국정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후, 내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제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나 한풀 꺾인 추세라고 한다. 소주는 어떻게 다시 관광객을 유치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문화유산에 마음껏 들어갈 수 있는 문화도 부러웠다. 관리에 대해 물었더니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1966~76년의 문화대혁명기에 있었던 파괴주의는 문화유산에도 영향을 미쳐 소주의 정원들이 모두 파괴되었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축물들은 모두 새로 만든 것이기에 망가지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다. 심지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속성수를 급하게 심어 지금은 문제가 되고 있으며, 석가산과 바닥 포장도 상당수 새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정원은 모두 '진짜'여서 활용하기 쉽지 않겠다고 하셨다.
내가 아는 석가산은 진시황 때 불로초를 구하지 못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짜로 기이한 산을 만든 것이 기원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은 달랐다. 구름에 사는 사람의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것이라 한다. 특히 사림원은 본래 사찰에서 수도승들이 수련을 하던 공간이었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석가산은 수련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 정원을 흔히 건축적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회랑이었다. 공간의 흐름을 연출하고, 전체 공간의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동선인 회랑에 대해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명나라 때는 없던 문화라고 하셨다. 성리학 중심의 근검했던 명나라와 달리 화려했던 청나라의 분위기는 항상 정원을 감상하기 위해서 비가 많이 오는 강남지방 정원에 회랑을 더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회랑이 없었던 명나라 시대의 정원을 상상해 보니 숨통이 틔이는 듯했다. 여백이 많은 한국 정원에 익숙한 나에게는 명나라 정원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회랑이 만들어낸 공간의 다채로운 리듬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한 시선에 작은 정원과 회랑 그리고 연못이 담기며 눈을 가득 채우는 것이 신비로웠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는 중국 정원의 장식이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중국인에게는 중국 정원의 장식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교수님께서는 잠시 고민하시고는 힘들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고 답하셨다. 공감되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좋기도 했다. 중국 정원이야말로 세계 최고이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답기만 하다는 식의 감상이 아니었다. 지나친 것도 있고, 좋은 부분도 있다는 말씀이셨다. 한국 정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소하면서 소박하지만, 허무한 부분도, 별로 볼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한 것이지, 전부 다 좋기만 한 정원이긴 어렵다.
교수님과 헤어진 후 상상 해보았다. 만약 조선이 부유한 나라였다면 어떤 정원을 만들었을까? 중국이 바닥과 벽면에 다양한 문양을 끝없이 만들어낸 것은 재료를 공장에서 찍어내는 현대사회와 달리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했기 때문 아닐까? 정원의 디자인은 당대의 문화와 산업, 경제 등 여러 가지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마지막날, 졸정원을 방문했다. 소주에 있는 가장 큰 정원이었다. 창덕궁의 관람정이 따라 했다는 부채꼴 모양의 정자 여수동좌헌도 궁금했고, 특이한 형태의 삼십육원앙관도 궁금했다. 7시 반 오픈런으로 들어가서 점심시간까지 보내고 올 요량으로 빵도 챙겼다. 본래 중원으로 들어가는 방식은 막혀 있고, 동쪽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거대한 정원을 상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았다. 여태껏 정원들이 무척 컸기 때문에 졸정원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관람하기 부담스럽지 않고, 반나절 간 천천히 배회하며 돌아다니기 좋았다. 빛과 어둠, 높고 낮음, 막힘과 트임의 중국식 변주가 흥미로웠다. 전통 건축물뿐 아니라 스태인리스 글라스로 장식한 근대식 건축물, 사방을 원으로 만든 건축물 등 볼거리가 다양했다. 석가산이 공간의 중심이 아니고 일부여서 살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설향운울정은 막혀 있어서 아쉬웠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가파른 길을 막은 것이 이해되었다. 몰려드는 인파를 피해 탁 트인 동원 한 구석에 앉아 빼먹은 곳이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했다. 졸정원을 마지막으로 모든 답사 일정은 끝났다.
중국 정원은 놀랍고 벅찬 순간, 지겹고 체할 것 같은 순간, 그리고 감동적인 순간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중국 정원은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져서 청나라, 문화대혁명기,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의 모든 과정이 혼재되어 있었다. 밀쳐야지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관광화된 정원은 파괴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기도 했지만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던 정원의 품격에 여러 번 넋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정갈한 벽을 배경으로 생기 있는 풀과 나무가 흘렀다. 건축에서 시작하여 넓고 고요한 물에서 끝났다. 그 사이 생각을 머금은 것처럼 작은 정원들이 발걸음을 붙들었다. 유려하게 연주되는 공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면 감동과 벅참, 외로움과 환희가 적절한 차이를 두고 끝없이 찾아왔다. 한국 정원만큼 정원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했던 답사가 아니라 전반적인 특징과 감상을 느낄 뿐이었지만, 궁금했던 중국 정원의 실체를 만나서 행복했다. 중국 정원을 여행했지만 한국 정원의 특징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