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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랑 Jul 05. 2024

해외 정원 여행

프랑스 남부, 일본, 그리고 중국

문화재수리기술자 공부를 하던 때였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취업해서 열심히 일을 할 때, 대학에 다시 들어가고, 전문자격시험에 도전을 하던 나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마침 능력 있는 친구가 모나코 출장을 동반한 고액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밤샘 작업도 많고, 몸을 쓰는 일도 있는 고된 일이었지만, 오랜만에 해외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다. 한국에서 밤을 새워가며 사전작업을 하고, 모나코에 가서 행사를 개최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날짜를 2주 늦게 바꿔서 모처럼 온 유럽에서 잠시 여행을 하기로 했다. 프랑스 남부는 20대 초반에 배낭여행으로 왔었고, 그때는 꿈을 찾으려고 여러 가지 경험을 시도하던 때였다. 이제는 ‘조경'으로 인생의 범위가 좁혀졌고, 내가 갈 곳은 분명했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역사 정원을 찾았다. 그중에서 빌라 에르푸시 드 로쉴드Villa & Jardins Ephrussi de Rothschild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어 답사지로 선택했다. 




주차장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서려는데 문이 막혀있었다. 기념품샵으로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정원 관련 기념품들과 책과 사진 등이 있었다. 카운터에서 티켓을 산 후 반대편 문으로 들어가면 정원으로 입장하는 구조였다. 바로 정원이 펼쳐질 것을 기대했는데 건축물부터 감상하는 구성이었다. 건축물 내부에는 그 시대에 사용했던 고가구들이 그대로 있고 그릇과 소품 등이 예쁜 찬장에 전시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테라스에 들어서니 강한 축선으로 뻗어나가는 정원이 펼쳐졌다. 밑으로 내려가서 외부로 나가 정원을 감상했다. 여러 가지 테마로 구성된 정원에는 일본 정원도 있었다. 테마파크 형식으로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조성된 정원을 하나하나 지나니 정원 끝의 퍼골라에 도달했다. 퍼골라 안에는 멋진 조각상이 있었고 분수쇼와 분홍색 아름다운 빌라가 밤이 되자 조명이 켜지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는 내내 화가 났다. 화가 날일이 아닌데도 화가 났다. 한국 정원이 받는 대우를 생각하면 화가 났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19세기에 만들어진 프랑스 작은 시골의 정원이 받는 대우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한국 정원도 제대로 운영되고 관리만 된다면 이곳 못지않게 멋져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공부를 계속했고, 실력이 부족해서 자격증 취득에 계속 낙방했다. 길어진 시간만큼 공부의 양은 늘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끝에 결국은 자격증도 없이 자격 취득 강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겨우 얻게 된 전문자격증은 오랜 수험생활과 강사라는 책임감이 공부의 깊이를 더하여, 한국 정원 관련 연구 보고서 작성의 연구진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했다. 한국 정원과 일본 정원을 비교하기 위해 교토 답사 일정이 포함된 연구였다. 숱하게 배낭여행을 다녔지만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정원을 공부하면서 일본 정원문화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한국 정원을 얘기하면 하나같이 영국과 일본 정원은 알지만 한국에도 정원이 있냐고 되물었기 때문에, 직접 보고 싶었다. 교토의 유명 정원들을 한 군데씩 다니다가, 일본의 문화재수리기술자가 위탁 관리하면서 운영하는 ‘무린암無鄰菴'을 방문했다. 무린암은 정원도 아름다웠지만 한국형 정원문화유산활용의 모범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정원이란 자고로 식물들이 자라나는 곳이기에 매일매일 관리해 줘야지 본래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정원을 위탁 관리를 하고 있는 업체가 문화재수리업체이기에 정원을 활용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도 무엇보다 정원 관리에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무린암에서 진행되는 정원 프로그램은 품격 있는 정원 해설과 더불어 '미니어처 정원 만들기 체험', '차 마시기', 그리고 ‘정원 알기의 날’을 정해서 정원의 꽃과 나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정원의 형태를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였다. 더하여 정원관리 뉴스를 발행하고, 정원 수업과 기모노 스쿨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품격 있게 운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본정원설계와 관리의 실전을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원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되었다. 고가의 수업은 몇 개월동안 무린안 근처의 숙소에서 지내면서 소수의 인원만 가지고 심도 깊게 이루어졌다. 무린암은 일본정원문화를 수준 높게 외국인에게도 전파할 수 있는 장소로서 활용되었다. 


서방사西芳寺 / 용안사龍安寺 / 무린암無鄰菴



벼르고 벼르던 중국정원을 얼마 전 다녀왔다. 일주일 동안 소주苏州에 있는 9개의 정원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중국정원을 직접보지 못했다는 부채감으로 홀로 다녀온 답사여행이었다. 그 유명한 소주의 4대 명원, 졸정원拙政园과 유원留園, 그리고 사자림獅子林과 창랑정滄浪亭도 좋았지만 정원문화유산 활용이 가장 활발히 되고 있는 곳은 망사원網獅園이었다. 야간 개장을 하는 정원이라는 정보를 미리 안 것이 아닌데, 한국에서부터 미리 연락을 했었던 중국의 조경학과 교수님과 저녁식사가 끝난 후, 숙소로 돌아가려던 길에 갑자기 여기서 망사원이 멀지 않으니 꼭 가봐라, 야간 정원 프로그램이 참 좋다며 추천해 주셨다. 놓칠 수 없는 기회라서 망사원으로 바로 향했고, 야간 정원문화활용 프로그램의 좋은 참고 자료가 되어 주었다. 중국 정원은 몇 개의 주요 건축물을 지난 후에 정원이 나온다. 그래서 건축물 하나당 짧은 공연이 하나씩 준비되어 있었다. 건축물을 지난 후, 정원에 들어서자 어두운 공간에 만월문이 파란 조명을 받고 있었다. 안내원을 따라 잠시 기다리자 만월문 옆에서 무용수가 나와 전통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다음에는 야외공간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만담이 이어졌고, 하이라이트로 연못의 맞은편 석가산에서 무용수가 나와 춤을 추고, 마지막에 배를 타고 대금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 모든 공연이 종료되었다. 조명의 퀄리티나 공연의 수준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정원을 활용한 야간 프로그램의 좋은 사례였다.  




한·중·일 정원 비교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정원의 차이를 연구하는 심포지엄이 10년 전쯤에 문화재청(지금의 국가유산청) 주관으로 열렸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시작된 연구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다. 그만큼 세 나라의 정원은 다르지만 뭐가 어떻게 다른지 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같이 한국 정원만 10여 년 공부한 사람이 일본과 중국정원을 한 번씩 답사한 것 만으로 비교하는 것이 답일 수 없겠지만 나름대로 느낀 바는 있다. 세 나라 정원에 대한 비교는 3가지로 가능하다. 첫째는 자연환경, 두 번째는 사상, 세 번째는 정치와 경제력의 차이이다. 3가지 요소는 모두 정원을 만드는데 가장 기본적인 배경이 되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상하이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본 중국의 지형은 너무나 놀라웠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대지의 평평함은 끝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전 국토보다 큰 크기로 어떤 지형의 변화도 없이 수평의 대지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 정도로 광활한 평지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에 섬들이 등장하였다. 드라마틱한 지형의 변화를 가진 작은 섬들이 방금 전에 본 광활한 대지를 보며 약간의 공포감마저 느낀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지난 일주일간 입면적 자연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힘들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안착하며 눈앞에 펼쳐지는 익숙한 입면의 자연들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만 않고 고마웠다. 입면의 자연이 끝없이 펼쳐지는 국토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귀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일본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질감을 중국에서는 극심하게 느낀 이유는 분명 지형 때문이었다. 일본의 교토는 우리와 아주 다르지 않은 자연환경이다. 분명 다르지만 중국의 완전한 평지와 국토의 70%가 산인 것과는 다른 부드러운 차이였다. 일본과 한국 정원과의 차이는 중국보다는 덜하다. 일본과는 사상과 정치, 경제에 의한 차이였다. 


일본은 무사 사회였고, 무사들은 불교를 따랐다. 불교 중에서도 ‘선’ 사상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서양의 영주와 같은 막부사회였고 중앙정치가 아니었다. 따라서 각 지역의 막부들은 자신의 권력을 드높이고자 했고, 불교 사찰은 막부 소유의 재산이었기에 권력 향유의 수단 중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사찰엔 정원이 발달하였다. 무사의 시대는 살상이 난무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일상에서 발달한 것이 차문화였다. 차를 마시는 중에는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긴장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마련했다. 이런 배경으로 다도가 발달했고, 다정 역시 자연스럽게 발달하였다. 무사가 아니더라도 지진과 태풍이 일어나는 일본 사회에는 ‘죽음'은 사회 전반의 문화에 영향을 끼쳤고, ‘와비와 사비'라 불리는 전통 미의식은 일본의 대표 정원 양식인 고산수정원과도 맞닿아 있다.


유원의 관운봉冠云峰 / 명재고택의 석가산 / 창랑정의 석가산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의 정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차경借景'이다. 경치를 빌린다는 표현은 정원을 만들고 감상하는 이들 모두를 겸손하게 만든다. 인간이 어떠한 디자인을 하더라도 자연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의식에서 나온 표현은 인간을 겸허하게 했다. 그런데 같은 ‘차경'이라는 언어를 한중일 모두 정원에 도입했지만 각자 실현하는 방식은 달랐다. 중국은 빌려올 경치가 주변에 없었다. 중국의 정원이 소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정원은 그러하다. 광활한 평지에서 경치를 가져온다는 것은 멀지만 어딘가에 있는 멋진 경승지를 내가 소유한 정원에 실현하거나, 혹은 상상 속의 경치를 조성하는 방식이었다. 소주의 9 정원은 모두 석가산石假山이 있다. 우리나라 석가산과 비교하면 같은 이름을 붙여도 되는지 고민이 될 만큼 다르다. 소주의 석가산 중에는 유원의 관운봉처럼 진짜도 있지만 대부분은 돌을 붙여서 인위적으로 만든다. 산의 형태는 구름을 본떴다. 구름에 사는 신선경을 정원에 실현했다. 


무린암의 옛 사진 / 나무의 크기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서 멀리있는 산을 차경으로 끌어온 경관


일본의 차경은 한국과 거의 비슷하면서 미묘하게 다르다. 무린암을 방문했을 때 차경이라는 표현을 쓰며 옛 사진과 함께 정원의 정 중앙의 경관을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멀리 있는 산과 정원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나무의 크기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원의 나무와 멀리 있는 산이 분간이 되지 않도록 경치를 끌어들여와 정원과 조화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설명을 듣고 바로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과 한국은 모두 주변의 경치를 빌려오지만 일본은 인공으로 만든 정원과 자연이 서로 분간이 안되도록 하는 방식이고, 한국은 정원이 자연인 척도, 자연이 정원인 척도 하지 않고 분명 구분되는 인공과 자연이지만 서로 어울리도록 하는 방식으로 경치를 가져왔다. 아주 미묘하지만 극명한 차이였다. 


다른 나라 정원 여행을 하면 자부심과 함께 자괴감이 함께 생겼다. 우리 정원만이 가진 개성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동시에 어떠한 관리도 받지 못하고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상황에 자괴감이 들었다.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바뀌면서 조직도 개편되었다. 앞으로 한국 정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정원에 대한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우려된다. 한국 정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광화 된다면 겉으로는 멋져질지 몰라도 오히려 훼손될까 봐 두렵다. 


무린암을 위탁관리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님께서는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말씀을 하셨다. “일본정원에서는 육성과 관리가 중요하다. 열심히 조성하여 정원을 준공했을 때의 멋진 모습에 감탄하지만, 정원의 긴 인생에서는 준공은 한순간일 뿐이다. 정원의 일생을 봤을 때 준공은 완성이 아니다. 완성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원의 생명이 탄생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무린암은 정원으로 태어나 120년 된 정원이다. 120년의 세월을 존경한다.” 


일본의 정원에서는 관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이끼 1㎡를 관리하는데 3~4일이 걸린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정원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필요한 곳에 노력을 쏟아부어 관리하는 일본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반면 중국 정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엄청난 관광지로 급부상하였다. 정원에 대한 충분한 이해보다는 관광산업으로서의 가치에 관심을 갖는 분위기였다. 중국 조경학과 교수님께 어떻게 모든 건축물들이 내부를 전부 관람할 수 있게 개방하는지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교수님께서는 문화대혁명 때 모든 정원 건축물들이 파괴됐고, 전부 새로 지은 것들이기 때문에 망가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한국의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원형 그대로이기 때문에 진짜이고, 그래서 활용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다. 일본과 중국 다음으로 한국의 정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이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길을 걷게 될 것인지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해본다.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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