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낯선 이에게서 받은 축복

by 초록풀잎

영어의 인사말을 우리말로 바꾼 말은 낯설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이 든다.

회사에 출근하면서 "안녕하세요"하는 것보다는 "좋은 아침이에요" 하면 더 산뜻한 인사말 같고

커피숍이나 식당 등에서 나올 때 “안녕히 가세요” 대신 “좋은 하루 보내세요” (have a good day)를 들으면 낯설지만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여행지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런 영어 인사는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한 번은 런던의 셰익스피어 극장 옆 스타벅스에 갔는데 엄청 잘 생긴 남자가 주문하려고 선 내게, 엄청 다정하게 "How are you?" 하고 물었다. 진심으로 나의 안부가 궁금한 사람 표정으로. ㅋㅋ

그리고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커피를 주면서 "Have a nice day"라고 인사해주었다.

우리말로 치면 그냥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일 텐데 왜 그렇게 기분 좋게 들리는지...

아마도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그가 엄청 잘생겨서였을 수도..??

세익스피어 극장 앞 스벅에 앉아 찍은 극장 입구
보로 마켓에서 산 초콜렛과 스타벅스의 잘생기고 다정한 청년이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런데 그런 영어식 인사를 우리나라에서 하려면 왠지 낯간지럽다.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안녕히 가세요" 대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기란 쉽지 않다.


나에게 익숙한, 아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인사말은 “안녕하세요”와 “안녕히 가세요”이다.

형식적으로라도 흔히 쓰는 말이 "안녕하세요"이지만 요즘엔 이 마저도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빵집이나 커피전문점에 가서 주문을 할 때, 주문받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안녕하세요" 혹은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하지만 주문하는 나의 경우에는 그 인사를 받고 "안녕하세요"하고 답하거나, 그냥 건너뛰고 주문에 돌입하는 경우도 많다.

또 반대로 그런 곳에서 내가 먼저 인사하고도 인사를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는데 답이 없어서 바로 주문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으니까.


이런 습관이 몸에 배다 보니 인사하는 게 더 어색한 경우도 많고, 주문하려는 사람이 줄을 길게 섰을 경우 더더욱 인사는 불필요해진다.


그런데 프랑스 파리 여행 중에 이런 습관 때문에 된통 혼이 난 적이 있다.

파리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에 있는 한인민박에 묵을 때였는데 민박 집 앞 빵집이 유명하대서 아침에 거기서 빵을 사 먹으려고 갔다. 유명하다더니 역시 줄이 엄청 길었고 주인은 주문을 받고 내주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불어는 하나도 모르는데 긴장되어서 줄 서 있는 동안 빵을 미리 골라놓고 바디랭귀지를 고심하고 있었다. 빵을 가리키며 다른 손 검지를 치켜세우고, 또 다른 빵을 가리키며 또 검지를 치켜세우는...

말하자면 "이거 하나랑 저거 하나 주세요" 정도의 바디랭귀지를 고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줄을 선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아줌마가 나를 향해 나지막이 "봉쥬르" 하자마자 나는 바로 빵을 가리키며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는데 그 주인아줌마가 버럭 화를 냈다.

"봉쥬르~~!!!!" 눈을 부릅뜨며 나를 향해 노려보듯 "봉쥬르~~~"라고 외쳤다.

난 순간 기가 질려서 조그맣게 말했다.

"봉쥬르~~~~~" 그러자 그 아줌마가 "블라블라 블라" (그래 그렇게 인사를 먼저 해야지...라고 말하는 듯.)

그러고선 내가 가리킨 빵을 가져와 싸 주셨다.

그 아줌마 표정이 얼마나 무섭던지... 나는 내 잘못에 대해 그 날 뼈저리게 느꼈다.


그 날 그 아줌마에겐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행하면서 평소엔 인사를 잘 하는 편이었다. 헤어지면서 "Have a good day"하고 인사하고, 특히나 여행 중에 만난 다른 여행자들에겐 흔히 서로 "Have a good trip"이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그런 영어 인사에 엄청난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남편과 터키를 찾았을 때였다.

호텔에서 소개해준 밤 공연이 있어서 호텔 앞에서 버스를 탔다.

그때 70대의 백발 노부부가 함께 타게 되어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분들은 미국에서 오셨다고 했다.

우리가 허니문이라고 하자 "대학생같이 보이는데 허니문이라고?"라고 놀라시며, 반가워하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늦게 공연이 끝나고 다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분들을 또 만났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 그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Have a happy life”


have a 까지 들었을 때 당연히 그다음은 good trip 일 줄 알았는데...

happy life라니...


백발의 할아버지가 허니문을 온 우리에게 들려주신 그 인사는

인사 그 이상, 우리에게 주는 축복 같은 느낌이었다.


가끔 그 순간을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활짝 웃으시며 말 해준 한 마디. "Have a happy life”

'나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나.' 생각하게 만드는 그 한 마디.

작은 인연이 선물해준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겐 최고의 결혼 선물이었다.


여행 중에서는 물론이고 일상 속에서도 더욱 화사하게 인사하며 살아야겠다.

너무 익숙해서, 한 듯 만듯한 인사말 "안녕하세요"를 환하게 웃으며 한다면

나도 그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 테니까...

또한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평생 기억할 축복의 말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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